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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유아인 "'베테랑'은 로또…한국의 제임스 딘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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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찬 목소리로 기자들을 맞았다. 달변에 당당한 모습이 여전히 보기 좋았다. 한창 오르막길을 올라 정점에 다가선 스타인데도 내리막길을 염두에 둔 듯 조심스레 말했다. 영화 ‘암살’과 함께 여름 극장가 흥행을 견인했던 ‘베테랑’의 주연배우답지 않았다.
‘베테랑’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재벌3세 조태오를 연기하며 1,00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유아인을 8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아인은 사극 ‘사도’의 개봉(16일)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 영조와 대립하자 광인 신세로 뒤주에서 굶어 죽은 불운한 인물 사도를 연기하며 추석 극장가 흥행 왕좌도 노리고 있다. 그는 조선 태종 이방원을 연기하는 SBS 50부작 대하사극 ‘육룡이 나르샤’의 방송도 준비 중이다. 서른이 되지 않은 배우치곤 거침 없는 연기 행보다.
-1,000만 배우가 된 소감이 어떤가.
“(피식 웃으며) 행복하다. 하지만 로또 맞으면 행복에 겨워하는 것보다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처럼 이것저것 걱정도 많다. 내가 교만해질까 조심스럽다. 흥행 스코어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치 내 것인 양 교만해질까 봐 조심하려 한다. ‘베테랑’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할 때는 젊은 배우이나 신뢰를 드리는 배우고 되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신뢰가 생겼다. 당연히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생겨났다. ‘사도’가 ‘베테랑’과 워낙 가깝게 개봉을 하다 보니까, ‘베테랑’으로 칭찬 받고선 바로 ‘요행이었네’ ‘우연이었네’라는 말 듣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도’에 대한 평이 좋아서 자신감이 생길 만도 하지 않나.
“‘베테랑’은 굉장히 오락성이 강하고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 흥행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사도’는 영화가 가진 색깔이 워낙 뚜렷해서 좋고 싫음이 분명하게 나뉠 수 있겠다, 특히 젊은 층이 쉬 감정이입 못하겠다는 생각도 했으나 언론시사회 뒤 평가가 좋아 안심하고 있다. 어떤 반응 나올지 정말 두려워하며 봤는데 다행히 좋은 말씀이 많아서 기분이 좋다. 워낙 진지하다보니 조금 싫은 구석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웃음) 후반 작업할 때 이준익 감독님과 어쩔 수 없는 것은 포기하자고 이야기했다. 사도의 진부함과 익숙함은 인정하고 이를 돌직구 같은 화법으로 우직하게, 정통성 있게 풀어내자고 했다.”
-사도세자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공부를 했나.
“사도세자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책이 담긴 몇 기가짜리 메모리카드를 건네 받았으나 열심히 보진 않았다. 웹툰도 있던데 사도세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듯하다. 해석에 따라선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을 아주 모진 엄마로 그리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지키기 위해 영조에게 고견을 한 인물로 묘사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하더라. 사도도 광인으로, 이상주의자로 각각 해석하던데, 하나의 관점에서 사도를 연기하려 하지 않았다. 해석이 분분하니 다양한 시선까지 담을 수 있도록 고심했다. 절대적인 악도, 절대적인 선도 없다고 생각하며 접근했다. 영조가 악이냐, 갇혀 죽은 세자가 선이냐, 그렇게 이분법으로 둘을 나눌 수는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사슬에 연민을 갖고 접근했다. 나는 워낙 비극을 좋아한다. 비극 안에서 배우가 아름다운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도는 계속 울고 소리치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톤 조절을 할 것인가 연구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인물 자체로는 사도가 그리 입체적이지는 아니다. 사도가 평면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 감정을 세밀하게 잘 쪼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기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는가.
“연기력은 모르겠고 나는 일단 만족한다. 나는 누군가로 대체되는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하는데 사극은 특히나 다른 배우로 대체되기 쉽다. 정형성이 있어 배우의 스타일이 개입되기 어렵다. 그래도 유아인만의 사도세자를 표현하고 싶었고 만족한다.”
-‘베테랑’의 재벌 3세나 ‘사도’의 사도세자는 ‘눈물의 왕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역할을 선호하는가, 아니면 우연의 결과인가.
“비극과는 무관하게 ‘베테랑’의 조태오를 선택했다. 나는 첫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할 때부터 비극적인 소년을 좋아했다. 나도 요즘 젊은이처럼 밝고 유쾌한 면도 있고, 나만 아는 마음 속 깊은 고독과 번민이 있다. 젊은 배우가 뒷부분을 꺼내 보이기는 쉽지 않다. 항상 해사한 얼굴의 청춘이어야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예쁘고 싱그럽고 꽃다운 청춘은 어른들이 만든 판타지다. 청춘은 비극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시기다. 그게 20~30대다. 그런 에너지를 아직 많이 못 뿜어 안타까웠다. ‘사도’만큼 뿜어낼 작품이 있을까? 내게는 ‘사도’가 행운의 작품이었다. 반드시 내 것이어야 한다며 달려들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사도세자의 슬픔이 느껴졌나.
“‘사도세자’와 이준익 감독 두 키워드만으로도 슬픔이 충분히 다가왔다. 시나리오를 읽고선 심지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교차시키는 구성이 정말 매혹적이었다. 그러니 숨차게 달려들었다. 사실 처음엔 간을 봤다. 틀림없이 나에게 올 텐데라는 생각이었다. 한류 스타도 아니고 드라마 스타도 아닌 내 주제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10년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줬다고 자신한다. 이 감독님과 전에 뵌 적도 있고, ‘나에게 줘야 이 사람이 안목 있는 것 아니야?’라고 자신했다. 내게 배역을 주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것이다. 나중에 이 감독님이 ‘너를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고 말해줘 매우 고마웠다. 사실 중국에서 더 잘 팔리거나 10대 소녀에 인기 있는 배우들에게 세상이 더 잘해 준다는 생각이 들면 서운하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내 길을 가다 보니 ‘베테랑’과 ‘사도’ 같은 작품이 왔다. 따지고 보면 모든 배우가 행운으로 톱스타가 되고 한류스타가 된다. 의도하든 안 하든 다들 그저 연기 잘하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을 것이다. 나도 스타를 꿈꾸던 소년이었고 독립영화로 입문해 이렇게 흘러왔다. 구불구불 흘러가다 이런 좋은 순간도 맞이했고, 또 구불구불 흘러가다 물길이 막혀 제대로 흐르지 못할 수도 있다.”
-곧 군대를 가야 하는데 아쉬움은 없나.
“안 풀릴 때보다 잘 풀릴 때 가게 돼서 다행이다. ‘육룡이 나르샤’가 앞으로 6,7개월을 딱 버티고 있는데 끝나면 입대해야 한다.”
-사도세자에 이어 이방원을 연기한다. 신분이 이제 왕가로 편입한 듯하다(웃음).
“맞다. 드라마 ‘패션왕’으로 인터뷰 할 때 세경이랑 나는 왜 이런 역할 할까, 우리가 가난하게 생긴 거야라며 서로 농담하듯 대화를 나눴었다. 그래도 난 부자 연기보다 가난한 사람 연기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금수저를 입에 문 사람보다 소외된 사람에 대한 연기가 좋다. 내가 금수저를 물지 않고 태어났기에 연기를 하게 됐다고도 생각한다. ‘사도’는 유아인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역할이고, 조태오는 독이 든 성배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베테랑’을 1,000만 관객이 사랑한 덕분에 내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듯하다. 결국 배우의 연기는 선택 받고 지지 받고 동의를 받아야 자신의 스펙트럼이 된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혼자선 불가능하다. 내가 방황하고 아픈 청춘, 주변 환경이 열악한 청춘이 아이콘이었다면 이제는 다리를 조금 옆으로 찢을 수 있는 배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도를 연기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
“언젠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 배우라면 연산과 사도와 이방원을 연기하고 싶어한다. 아주 드라마틱한 배역이니 당연하다. 사도는 부담도 되나 내가 꿈꿔왔던 캐릭터다. 하고 싶었던 역할이 하게 됐으니까 이보다 행운아가 어디 있나.”
-연기하고 싶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라는 코드에 끌렷다.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은 편이었는데 그런 아들이 굉장히 많더라. 서로 무뚝뚝하고 데면데면하고 경쟁심 같은 것도 있고…. 참, 남자들이 유치한 인간들이다. ‘깡철이’가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다면, ‘사도’는 아버지가 보고선 많은 걸 느끼실 영화다. 아버지와의 갈등 관계가 사도 역할을 좋아하는데 많이 작용했다. 지금은 아버지와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 아버지가 ‘베테랑’을 보시고 나선 ‘오늘은 관객 몇 만이 들었네’ 문자도 주셨다.”
-대리청정 장면에서 선배인 송강호와 불꽃이 튀는 연기를 보여준다.
“불꽃이 튀면 안 되는 장면인데 후배로서 불꽃이 튀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선배를 아주 뻔뻔하게 응시하고 동등해져야만 내가 꺾이지 않는다. 앞뒤 맥락상 당연히 내가 꺾여야 하는 장면인데 기운 세게 그 장면을 연기했다. 이 감독님이 종종 말씀하셨는데 배우가 지닌 촌스러운 욕망이다. 장면을 제대로 묘사하는 정확한 연기가 아니니까. 선배들이 여럿 있고 첫 촬영이라서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촌스러운 욕망인가.”
-독립영화로 충무로에 첫 발을 디딜 때 지금 같은 성공은 생각지도 못했을 텐데.
“그래도 꿈은 꿨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영화를 하다가 영영 (영화판을) 떠날 수도 있지만, 하게 되면 끝까지 가봐야지 하는 두 가지 마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단한 영화배우인 양, 충무로를 주름 잡으며 살고 싶은 욕망과 꿈도 있으나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유학도 가고 싶다. 10대 후반과 20대를 온전히 연기하는 사람으로 다 보냈으니까, 공부도 하고 싶다.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박수 소리는 그리 크지 않겠지만. 그게 내가 배우라는 일에 접근하는 방식 같다. ‘내가 즐기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라, 이게 사라져도 슬퍼하지 말아라 아가야’, 이런 식으로 사는 게 내 방식이다. 신선 놀음하듯 먼산 보듯 가만히 있다가 카메라 돌아가면 내가 느낀 대로 풀어내는 게 내 연기 방식이다.”
-함께 연기한 문근영은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나. 아들 정조 역을 연기한 소지섭을 평가하면.
“(혜경궁 홍씨를 연기한) 근영씨는 굉장히 붙임성이 좋고 밝고 건강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빠 잘해봐요’라고 말하는, 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예쁜 ‘선배님’이었다. 근영씨가 ‘오빠 잘했어’ 그러면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라고 농담하며 촬영을 했다. 아들로 ‘나와 주신’ 소지섭 선배님은 심하게 아빠보다 잘생기셔서 할 말이 없다. 영화 속에서 인원왕후(김해숙)가 ‘성품으로 보나 인물로 보나 우리 세자가 떳떳하지’라고 하는데 소지섭 선배님이 나보다 더 떳떳하더라. 아버지보다 잘생기셔서 감사하다. 정말 잘생기지 않았나? 짜증날 정도로 얼굴이 나랑 아주 다르다.”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드나.
“그렇다. 앞으로 제임스 딘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그렇게 불러주는데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시대 청춘을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꼭 하고 싶다. ‘네가 뭔데 대변을 해?’ 할 수도 있지만. 배우는 하늘에서 그저 사랑 받는 별이 아니라 동시대를 상징해야 한다. 알맞은 작품을 통해 진정한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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