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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문과라서 죄송… 취업박람회 어리바리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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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공채 시즌이 다가왔다.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도 취업 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1년 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친구 A양은 취업의 길로 노선을 틀었다. 그는 험난한 일반 기업 취업노선엔 문외한이라, 취업 박람회에 가보기로 했다. 만만한 대학 5학년생 백수 친구인 내가 동행했다.
학교 근처 건널목에선 아주머니들이 학원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완벽한 실전 자소서 작성’을 위한 단기 취업 준비반이 곧 개강한다는 소식이었다. 강사는 대기업 인사팀장의 이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박람회에 가기 전 A양과 밥을 먹으면서 전단지를 유심히 봤다. 이제 이런 강의로 돈도 번다. ‘완벽한 자기소개를 가르친다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잠시 생각했다.
박람회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다들 손에 안내책자를 두 세 권씩 들고 줄 서서 상담을 받았다. 박람회 참가 기업을 적어둔 책자를 펼쳐봤다. A양은 관심 있는 기업이 나온 페이지를 야무지게 접기 시작했다. 그리고 접다가 점점 너털 웃음이 났다. 우대 전공란에 ‘이공계’와 ‘경영계’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취업 박람회 후기. 취업 박람회를 돌아보면서 느낀 건 두 가지다.
첫째. 이래서 ‘문송하다’는 말이 나오는구나.
둘째. 일본어와 중국어를 했어야 했다.
첫째는 무엇이냐 하면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을 줄인 것이다. 박람회에서 우연히 인사팀에 들어간 과 선배를 만났다. 리크루팅 업무로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방산 관련 일을 하는 대기업 계열사에 있다. ‘방산’을 다루는 기업이니 당연히 이공계 학생을 더 많이 뽑는다. 비율로 따지자면 “9:1 정도?”라고. 9가 이공계고, 1이 고등학교 때 사회 배우고 수능 친 문과(경영계열 포함) 비율이다. 그런데, 취업박람회에서 상담을 받고 있으려니 상담 받겠다고 줄 문과 애들이 과반을 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비율로 따지자면 6:4. 문과생이 6이고 이공계열이 4다. “문과는 얼마 안 뽑는데 애들은 상담 받으러 많이 오니까 미안하지.” 선배는 말했다. 친구 A양이 지원하길 희망하는 화장품 업체도 이번엔 R&D 직군만 뽑는다. 문과 나온 애들은 차고 넘치는데 자리는 없다.
둘째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했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중국어야 중국 시장으로 나가는 기업이 많으니 워낙 (특히 문과라면) 그렇고, 일본이 더 눈에 띈다. 작년도 그렇고, 취업 박람회에서 일본 기업의 적극적인 리크루팅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중동으로 청년들이 가서 대한민국이 텅텅 비는 게 아니라 일본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일본 기업 소개를 보면 ‘인재를 알아보고 키우겠다’거나 ‘큰 제약 조건 없이 쉽게 취업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일본은 일할 사람이 줄고 있다. 우리보다 인구구조 변화가 약간 빠르다. 더 빨리 늙고, 젊은 애들이 더 빨리 줄고. 우리는 에코세대(1979~1996년 생)까지가 인구 수 정점을 찍는다. 92년생이 약 73만명, 94년생이 약 72만명. 96년 이후론 저출산 기로로 접어들어 애가 줄어든다. 당연히 노동시장에 나오는 인구도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 간극에서 가장 많이 교육받았다는 한국의 청년 세대-2009년 대학진학률은 77.8%로 정점을 찍었다-를 구인하고 있다.
일본의 인력채용업체 디스코가 2014년에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일본 기업 중 1/3 이상인 36%가 ‘일본에서 유학생을 고용했거나, 고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2010년에 비해 3배 늘었다. 일본 후생노동성 통계를 보면 2014년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 수는 약 78만 명. 2년 사이 15% 증가했다. (▶ 관련 기사 보기)
취업 박람회를 나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취업에 대한 막막함 같은 것. A양이나 나나 고학력자 백수인 셈인데,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
A양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거나, 아니면 변리사 시험 같은 전문직으로 길 뚫는 공부를 하다가 취업 시장에 돌아오는 친구들이 생긴다. 안정성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고려해 그 쪽을 가봤다가 ‘정말 아니다’ 싶어서 돌아오는 경우다. 이러면 붕 떠서 다시 취업 시장에서 헤맨다. 진로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사회로 진입하기까지 기간이 길어지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대학원을 갈까’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다. 돈이 좀 있으니까 여유 있게 경력개발하고 좀 더 나은 조건의 직업을 택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고, 돈 없는데 빚내고 조교 하면서 대학원 가는 친구도 있다. 여하튼 학사 자격 소지만으론 경쟁력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다시 대학을 간다. 매년 1만 명씩 박사가 쏟아져 나온다고. 직업능력개발원 김안국·유한구 박사가 지난해 8월 내놓은 '대학 및 전문대학 졸업자의 직종별 수요 추정' 보고서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석박사 인력이 25만2,901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인력은 113만589명으로 87만7,688명이 남는 인력인 셈이다. 학위 장사야말로 대동강물 장사가 됐다.
A양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생들 걱정도 했다. A양 동생은 2년제 전문대를 나왔다. 우리도 ‘취업이 소원’이라곤 하지만 동생들 보면 일을 시작한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란 걸 안다. 내가 일전에 방송국에서 인턴을 하면서 만난 동생은 2년제 전문대학에서 비서학과를 전공했다. 나보다 사회생활을 적어도 3-4년은 빨리 시작한 셈인데, 얼마나 싹싹하고 일을 잘 하던지 어리바리한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 친구는 2년 뒤에 잘렸다. 방송국 사람들은 다 그 친구를 좋아하고, 잘 해줬는데, 그런 것 얄짤 없이 그냥 2년 뒤엔 잘렸다. 어떻게 입사하냐가 봉급, 근무조건, 안정성(대기업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볼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4, 중소기업 정규직은 52,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5)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하는 일은 같을 수 있어도 나머지가 다르다.
A양과 대화를 나누던 카페는 스터디를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로 붐볐다. 대학가 어디를 가든 카페는 붐빈다. 수다 떨러 오는 사람보다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붐비는 카페를 보면서 취업 얘기도 이제 지겹다고 생각했다. 아마 모두에게 지겨운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 다들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고 기를 쓰고 공부 중이겠거니 싶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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