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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버터칩 인기 비결도 '수학'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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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부진 조선업계 돕기 위해
데이터 통해 해류·수온 등 분석
국가수리과학硏, 기업과 함께
산업계 난제 발굴·해결하는
'산업수학 점화 프로그램' 시작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우리 조선업계가 올 상반기 7조원이 넘는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의 주범은 해양플랜트. 경험도 기술도 턱없이 부족한 국내 기업들이 고부가가치의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과감하게 뛰어들었지만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예측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조선업계에 수학자들이 손을 내밀었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예측은 수학을 바탕으로 한다. 해양플랜트 뿐만 아니라 산업계가 맞닥뜨린 다양한 난제들이 수학자들의 눈과 손을 빌리고 있다. 수학자들이 기업에서 찾지 못한 해법으로 난제를 해결한다면 여기서부터 혁신이 시작된다.
● 바다를 수학으로 예측한다
해양플랜트는 해저면을 수백~수천m 뚫고 들어가 석유나 가스 등을 뽑아 올리는 해상 설비다.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해양 플랜트 건설의 최대 난관은 불확실한 바다의 상태다. 해저 지질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해류 속도, 파도 높이, 수온, 해풍 세기 등이 시시각각 급변해 경험 있는 기업들도 시추나 운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건설 기간과 기자재 구매 비용, 인건비 등을 아무리 깐깐하게 따져서 준비해도 바다가 한번 변덕을 부리면 사업이 지연돼 비용이 늘어나기 일쑤다.
수학자들이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수학을 이용하면 다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다. 실시간 바닷물 흐름을 유체역학 수식으로 만들어 해양플랜트와 어떻게 반응하는 지 모의실험하는 알고리즘을 만들면 사업을 좀더 현실적으로 전망할 수 있다.
실제 기업들이 이와 유사한 모의실험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김현민 부산대 수학과 교수는 “수학적 한계가 있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연구진이 직접 현재 모의실험의 문제를 찾아내 수학계에 공개하고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 허니버터칩 마케팅의 비밀
이미 일부 산업에서는 수학에 영향을 받은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달콤한 맛 열풍을 일으킨 과자 ‘허니버터칩’의 유행 비결은 유통업계의 주된 관심사다. 수학자들로 구성된 서울대와 KT 공동연구진은 허니버터칩 소문이 사회관계형서비스(SNS)에서 어떻게 퍼졌는지를 수학적 위상기하학으로 구성해봤다. 적극적 호응을 보인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 입체 관계 구조로 그려본 것이다.
특정 제품이 인기를 끌면 흔히 광고 모델 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 허니버터칩 열풍을 주도한 이들은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김이식 KT 상무는 “본격 유행은 출시 후 46주 정도 지나 시작됐다”며 “유행을 촉발시킨 것은 1~3주에 긍정 반응을 적극 보였던 SNS 이용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곧 식품 마케팅 관계자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긴 집단이다.
수학을 잘 활용한 덕분에 빠르게 성장한 중소기업도 있다. 수학자와 공학자가 모여 있는 인코어드 테크놀로지는 자체 개발한 ‘스마트 미터’로 전력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기존 전력 계량기는 15~20년 전 기술이 적용돼 전기 사용량을 15분 단위로 측정한다. 실시간으로 측정이 되지 않아 전기가 언제 얼마나 쓰였는 지 세밀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그 바람에 매년 전력 수요 예측을 둘러싸고 논란이 반복된다.
특히 가정에서 발생하는 실시간 전력 사용량 데이터는 기존 계량기 데이터의 81만배여서 기존 기술로 처리할 수 없다. 인코어드 테크놀로지는 이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을 다양한 수학 함수를 적용해 2년여에 걸쳐 개발했다. 이 알고리즘이 적용된 스마트 미터는 가전제품 각각의 실시간 전기 사용량을 산출한다.
● 수학 연구는 세계 11위, 산업계 기여는 초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8년 이미 “산업 혁신은 수학 기반의 과학 연구에 기초해 이루어진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고,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국가 차원에서 산업수학 육성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늦었지만 이에 동참하기로 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가 금융, 의료, 조선해양, 전력산업, 수산업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수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기업과 함께 발굴하는 ‘산업수학 점화 프로그램’을 이달부터 시작했다. 박형주(포스텍 수학과 교수) 대한수학회 부회장은 “우리나라 수학 연구 수준은 세계 11위인데 역량이 산업계로 연계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프로그램은 수학자들이 기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학자들이 이미 많이 진출했다고 알려진 금융 분야도 아직 초보 단계다. 대부분 외국에서 수학 기반의 금융상품을 가져다 수정해 활용하는 정도라는 평가다. 우리만의 참신한 수학적 금융상품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인태 가톨릭대 수학과 교수는 “기존 금융수학은 상품 개발이나 파생상품 위험관리 등 일부 영역에 치우쳐 있다”며 “금융산업 전반으로 수학 활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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