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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절반 "기술 혁신, 단기 지원보다 R&D 강화가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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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간 정부 지원 활용한 기업 41%에 불과… 홍보 부족 분석
10대 그룹 상장사들의 올 상반기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감소했다. 여기에 유가하락, 내수침체 등 안팎의 부정적인 요인까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국내 산업계는 위기 극복을 위해선 결국 기술혁신이 시급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기업의 기술혁신 인식 조사’ 결과, ‘산업 혁신의 기반은 결국 과학기술’이라는 기업들의 생각이 분명히 확인됐다. 다만 지원해 줄테니 성과를 내라는 식의 정부 가이드라인보다 산업계가 과학을 기반으로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기업인들은 강조했다. 조사는 기술혁신 부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631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이 가운데 일반 중소기업은 35.8%, 혁신형 중소기업은 54.8%, 중견기업은 5.7%, 대기업은 3.6%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정부 지원 정책”
중소기업 대표 A씨는 회사 규모를 키우기 위해 국가 연구과제 사업에 신청하려 했는데, 절차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내야 할 서류도 너무 많았다. 주변에 물어보니 대신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까지 해주는 ‘브로커’가 있다며 연락해보라는 조언을 듣고는 포기했다. 브로커를 통하려면 비용이 드는 데 그렇게 까지 하면서 신청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업인들 사이에서 “정부 제도는 아는 사람만 아는 것”, “공직자와 알고 지내는 게 기업의 중요한 역량”이라는 말이 오간다.
기업의 기술혁신 인식조사에 참여한 기업 가운데 최근 3년간(2012~2014년) 정부의 기술혁신 지원을 활용해본 경험이 있는 곳은 261곳(41.4%)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의 기술혁신 지원은 기업의 기술혁신 관련 활동을 돕기 위해 각 부처나 공공기관들이 내놓은 여러 가지 정책이나 제도 등을 말한다. 세제나 자금, 인력 지원뿐 아니라 인증, 포상, 컨설팅 등도 모두 포함된다. 가장 많이 활용된 건 자금 지원이다. 지원제도를 활용했다고 응답한 기업 중 139곳(53.3%)이 정부 자금을 지원받았다. 다음으로 조세 지원(19.2%)과 인력 지원(17.6%)의 순이었다.
정부의 기술혁신 지원을 활용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기업 370곳(58.6%)은 그 이유로 ‘정보 부족’(224곳ㆍ60.5%)을 들었다. 정부가 여러 정책을 쏟아내지만 정작 산업 현장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기업들이 활용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얘기다.
한 기업인은 “정부 정책의 혜택을 받기 위해 공직사회에 ‘줄’을 대야 하고, 정책 브로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산업계의 정부 의존도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오래 갈까”
현 정부의 기술혁신 지원 정책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빼놓을 수 없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전국 17개 지역에 각각의 특화 산업에 강점을 가진 대기업을 연계해 만든 기관이다. 중소ㆍ벤처기업 등은 이곳을 통해 대기업으로부터 자금이나 인력, 컨설팅 등을 지원받고, 대기업은 우수한 기술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기업들의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술혁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묻는 질문에 ‘비교적 도움 된다(178곳ㆍ28.2%)’거나 ‘매우 도움된다(43곳ㆍ6.8%)’는 응답은 35%에 그쳤다. ‘거의 도움이 안된다’(21곳ㆍ3.3%), ‘별로 도움이 안된다’(63곳ㆍ10.0%), ‘효과를 모르겠다’(138곳ㆍ21.9%)는 부정적인 응답이 35.2%로 적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중소?중견기업보다 대기업에서 오히려 더 높았다. 중소기업계에선 역대 정부에서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일회성에 그쳤던 점을 경험적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다 창업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다음 정부 때도 안정적, 지속적으로 운영될 지는 모를 일”이라며 “자칫 중소기업의 대기업 의존을 부채질하는 부정적 영향도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자체 R&D 경쟁력이 곧 혁신”
산업계는 정부가 나서서 타기업 지원을 독려하고 목표치를 제시하는 것은 궁극적인 기술혁신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은 ‘공급자 중심적인 추진 방식(314곳ㆍ49.8%)’, ‘단기적인 실적이나 성과 위주의 추진(184곳ㆍ29.2%)’을 정부의 기술혁신 지원 정책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경쟁 기업과 차별화된 기술혁신을 위해 정부의 자금 지원이나 기술?제품 인증, 투자?융자가 효과적이라는 답변은 각각 119곳(18.9%), 41곳(6.5%), 41곳(6.5%)에 그친 반면, ‘자체 연구개발(R&D) 경쟁력 강화’가 더 효과적이라고 답한 기업이 326곳(51.7%)이나 됐다.
정부가 공공연구기관이나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해 창출된 R&D 성과가 기업에 이전되는 것도 산업 혁신의 좋은 모델이지만 응답 기업 중 545곳(86.4%)은 공공연구기관이나 대학에서 기술이전을 받은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필요한 기술이 없어서(141곳ㆍ25.9%)’, ‘사업화하기에 부적합해서(83곳ㆍ15.2%)’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정부의 R&D 지원 역시 기업들의 수요를 반영하기보다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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