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불꽃놀이

입력
2015.08.23 17:07

지난 주말(22일)은 1953년 7월 휴전 이후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 일원 시민들은 여느 때와 하등 다르지 않은 일상 생활을 누렸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영화관은 평상시 주말처럼 사람들로 붐볐다. 시내 교통량과 바삐 오가는 유동인구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한강 남북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의 극심한 정체는 평소와 똑 같았다. 골프장은 여전히‘굿샷!’소리가 높았고, 등산로와 유원지는 막바지 여름 휴일을 즐기려는 인파로 넘쳤다.

▦ 남북의 서슬상 이날 오후 5시 이후 대규모 군사충돌이 벌어질 개연성이 농후했다. 군사적으로 남북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임에서 사람들은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를 화제로 삼긴 했지만 그냥 화제로 끝났다. 사람들 얼굴에서 심각하거나 불안한 표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북측이 최후통첩을 보내온 뒤에도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물론 불안해 하고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없기는 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남북간 군사 대치 상황의 심각성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 접경지역인 경기 김포시의 한 주민자치위원회는 이날 밤 불꽃놀이까지 했다. 그 시각 남북간에 고위급 대화가 진행 중이어서 마음을 놓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회담 결과에 따라 언제든 군사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 상황은 그대로였다. 김포와 연천 일부 지역의 주민 대피령도 해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이 지역은 군사분계선에서 10㎞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인근에는 대북 심리전 확성기 시설도 있다. 이런 곳에서 밤 10시쯤 불꽃놀이를 했으니 영문 모르는 주민들이 깜짝 놀란 것은 당연했다.

▦ 비슷한 시각 경기 시흥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도 불꽃놀이가 벌어져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엄중한 상황임에도 사람들의 무신경과 무감각이 도를 넘은 느낌이다. 그간 북한의 수많은 위협이 있었지만 별일 없이 넘어간 학습효과 탓이 크다. 은연중 전쟁을 불꽃놀이 정도로 여기는 심리도 작용하는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 게임 등에서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전쟁을 구경거리로 여기는 심리다. 그러나 현실 속 전쟁은 참혹하다. 안보상황에 대한 무신경과 한판 붙자는 무모함을 다같이 경계해야 한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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