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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지킨 고국… 반지하 사는 칠순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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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국적 회복했지만
유공자 연금 수급권자 제한 탓,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등 50만원뿐
“오래 살다 보니 내 얘기를 들어주러 오는 사람도 있네.”
열린 방문 앞에서 이름을 여섯 번 부르고 나서야 보청기를 낀 최정선(76)씨가 인기척을 알아챘다. 10일 오전 인천 남동구의 한 주택 반지하방은 해가 중천인데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최씨는 이날도 전기세를 아끼려고 전등을 켜지 않은 채 자투리 도라지 무침과 구운 김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한겨울에도 두껍게 옷을 입고 지내면 가스비가 많아야 2만원, 여름에는 900원밖에 안 나와.” 전에 살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낡은 침대와 밖에서 주워온 전기장판, TV, 소파가 세간의 전부였다.
최씨는 중국에 남편과 자식이 있지만 굳이 한국에 머물 것을 고집했다. 할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지켜낸 나라이기 때문이다. 1920년 한국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을 대파한 ‘봉오동 전투’에서 사령관을 맡았던 최진동(1883~1941)장군이 바로 그의 할아버지. 최씨도 중국 지린(吉林)성 봉오동에서 태어나 2005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인근 석현에서 평생을 살았다.
“할아버지는 1912년 봉오동학교를 설립해 학생들에게 반일계몽사상을 가르쳤고 3ㆍ1운동 직후에는 사재를 털어 사들인 무기로 항일무장단체인 군무도독부를 만들었어. 봉오동 지리를 잘 아니까 일본군을 무찌를 수밖에 없었지.” 최씨는 할아버지의 공적을 줄줄 꿰고 있었다.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최 장군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하지만 김좌진ㆍ홍범도 장군에 비해서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씨의 가족사는 무관심에 잊혀지고 있는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의 빈한한 삶을 잘 보여준다. 생활은 늘 어려웠다. 광복 후 집안 재산이 중국 정부에 몰수돼 큰 언니(2012년 작고)와 오빠(79)는 학교 다닐 나이에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이었다. 최 장군의 둘째 아들인 아버지는 형과 동생을 찾으러 남한에 내려왔다가 1950년대 후반 병사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다.
2010년 국적을 회복한 최씨의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20만원과 기초생활급여 30만원 뿐이다. 5년 전부터 심근경색을 앓아 월 8만원에 이르는 약값과 건강보험이 적용 안되는 초음파ㆍ혈관검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아끼고 있다. 2013년 여름에는 기초생활급여가 15만원 깎였는데 알고 보니 아들이 한국에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중국국적인 아들은 불법체류 상태라 돈을 벌면 벌금을 내야 했다.
그는 구청과 공공기관 여러 곳에 전화를 걸고 ‘구청장님께’라는 제목으로 편지까지 보냈고 9개월 뒤에야 생계급여가 원상회복됐다. 최씨는 “최진동 장군 손녀라고 써 붙이고 있으면 이보다 나을까 싶다가도 할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될까 봐 그럴 수도 없다”며 “오빠도 노령연금 20만원 외에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씨 남매가 유공자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수급권자가 1명으로 제한돼 있어서다. 해방 이후 줄곧 한국에 머물렀던 셋째 삼촌이 연금을 받고 있다. 최씨는 “정부가 1980년대 국적을 회복시켜준다고 했을 때 한국에 들어왔으면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을 텐데 당시엔 비행기삯도 마련하기 어려워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직 국적 인정이 안된 아들 부부는 체류기간이 만료돼 지난달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최씨의 남편은 “이럴 바엔 차라리 중국에서 살자”며 아직도 설득하고 있다.
그래도 최씨는 할아버지가 항상 그리워했던 한국 땅에서 이 정도나마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고맙다고 했다. 최씨는 “돌아온 조국에 부담이 되기 싫어 일을 하고 싶지만 몸이 아파 그러지도 못한다”면서도 “반드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눈을 감아야겠다”고 말했다.
“남들 보기엔 제 삶이 ‘하루살이’처럼 힘겨울지 몰라도 최진동 장군이 대한민국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손녀가 죽는 날까지 보초를 서고 있는 겁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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