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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선거제도, ‘뺄셈의 합의’ 를

입력
2015.08.04 17:49

여야 ‘1순위 요구’만 지키면 절충 가능

‘덧셈의 합의’ 고집하면 국민저항 자초

이미 제시된 ‘선관위案’으로 수렴해야

지난 3월 21일자 이 칼럼에서 ‘중앙선관위 생각이 답이다’라고 썼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현행 선거법을 개정을 위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첫 회의를 개최한(3월 18일) 직후였다. 중앙선관위는 당시 전체 국회의원 수는 300명으로 유지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2대 1로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의원수에 대한 헌법적 공감대를 충족하고, 헌재가 요구한 유권자 등가성을 지킬 수 있다. 승자독식 폐해를 줄이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지역주의 타파 효과도 있어 정치개혁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은 서둘러 정개특위를 구성했다. 14개월 시한 가운데 5개월이 지난 뒤였다. 하지만 정개특위는 선관위의 제안에는 애써 무관심했다. 좋은 취지라는 것은 알지만 지역구 의석을 대폭 줄여야 하는 전제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정치권은 스스로 지역구 의원수를 줄이지 않을 것이며, 시간만 끌다가 여야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결론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5개월이 지났다. 국민의 우려대로 흘러가고 있다.

정개특위는 13일까지 새로운 선거구 기준을 마련하여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정개특위 활동은 이달까지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아직도 통일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여당은 전체 의원 수를 늘려선 안 된다는 국민적 요구를 바탕으로 헌재의 ‘2대 1 등가성’을 실현하자는 생각이다. 야당은 정치개혁에 중심을 두고 헌재의 취지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당 주장대로라면 비례대표 의석 수를 지역구 의석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야당의 주장대로라면 전체 의석을 20~30% 늘리는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일주일 내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렇게 믿는 국민은 없다. 정치인 개개인의 ‘밥그릇’ 문제이기 때문이다. 합의가 된다면 지역구도 늘리고 비례대표도 늘리는 것을 서로가 묵인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국민의 질책은 으레 그랬듯이 상대방을 비난하는 모양새만 갖추면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너무나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비용과 예산은 둘째로 치더라도 가뜩이나 심각한 정치 혐오를 부추겨 국회는 국민의 무관심과 비아냥 속에 침몰할 것이다.

정개특위의 합의는 있어야 하고, 그 합의는 국민의 이해심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명제가 있다. ‘덧셈의 합의’를 지양하고 ‘뺄셈의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여당과 야당이 원하는 조건들을 모아서 합의안을 만들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킬 것만 간직하고 나머지는 하나씩 털어가는 절충안이 그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위상이다. 지난달 구성된 선거구획정위는 국회 산하에 있던 것을 이번에 중앙선관위 산하에 두기로 해 비교적 중립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전체 의원 수나 지역구와 비례대표 간 비율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면 다른 문제들은 중립적인 선거구획정위에 맡겨두어도 될만하다. 현재의 여야 대치를 합의로 이끌기 위한 ‘뺄셈의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렇다. 새누리당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의석 수를 늘리지 않겠다면 지역구 의석 확대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야당은 정치개혁을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겠다면 의원 수 확대 주장은 차선으로 내려야 한다. 자신들의 ‘1순위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2순위, 3순위 요구’는 접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겠다면 혼자 정치를 하자는 것이며, 국민을 우롱하여 속여먹겠다는 속셈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300명을 지키고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절충안은 결국 중앙선관위의 제안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그래서 ‘중앙선관위 생각이 답이다’는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개특위의 활동 시한(8월 31일), 선거구획정위의 획정안 제출 시한(10월 13일), 선거구 획정안의 국회본회의 처리 시한(11월 13일)을 이번에는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총선(4월 13일)에서 투표율이 20~30%로, 그 이하로 떨어지는 국민적 ‘반란’에 직면할 것이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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