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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쓰비시의 사과를 듣고 싶다면…

입력
2015.07.27 14:34

日정부 여전히 식민지배 합법론

무라야마 담화 등 공식 사과했지만 한반도 불법 강점 인정 않고

한국인 징용 피해자 철저히 외면

한국 정부는 궁색한 태도… 외교전쟁 통해 해석 차 바로잡아야

초대 주일대사였던 김동조 전 외교부장관이 한일 국교정상화 직후인 1966년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만나기 위해 일본 측이 제공한 황금마차에서 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초대 주일대사였던 김동조 전 외교부장관이 한일 국교정상화 직후인 1966년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만나기 위해 일본 측이 제공한 황금마차에서 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정부는 지금도 병합조약 및 식민지배를 둘러싼 해석 차이를 덮어두길 원한다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이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이 회사 공장에서 강제노역한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급키로 한 반면, 한국인 징용 피해자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미쓰비시를 포함한 일본 재계는 “한국의 경우는 법적인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한국인 강제징용은 일제의 ‘국민총동원령’이라는 국가적 조치에 따른 것이므로 강제징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 역시 일제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전제하에 모든 개인청구권이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일본이 식민지배 합법설을 토대로 모든 개인청구권을 부인하는 만큼, 최근 메이지(明治)유신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과정에서 불거진 ‘강제 노동’ 해석 논란을 포함해 한일관계를 막고 있는 거의 모든 과거사 현안은 1910년 8월에 체결된 한일 병합조약의 해석을 둘러싼 ‘근본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즉 일본의 주장대로 합법이었다면 일본의 한반도 병합과 그에 따른 식민지배 역시 적어도 법적으로는 정상적인 행정권의 행사로 간주되어 ‘강제 노동’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병합조약이 원천적으로 무효였다면 일본의 한반도 강점 자체가 법적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에 식민통치 행위 또한 법적 근거를 잃게 된다. 이 경우 당연히 한국측은 불법행위인 일제의 식민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갖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병합조약 및 식민지배 무효 문제는 역사인식 및 과거사 현안을 둘러싼 한일관계의 근본 문제이자 ‘인계철선’이랄 수 있다. 인계철선이란 폭발물에 연결되어 건드리면 자동으로 터지게 하는 가느다란 철선을 말한다. 병합조약 및 식민지배 무효라는 인계철선 자체를 잘라 버리지 않는 한 한일관계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 식민지배 합법론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 일본

앞선 연재 글(4회, 한국일보 2015년 2월10일자 8면)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한 바와 같이 한일 양국은 1965년 6월22일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기본관계조약)의 제2조, 이른바 ‘구(舊)조약 무효’ 조항을 통해 이 문제를 일단 봉합했다. 즉, 이 조항의 말미에 언급된 “이미(already)의 의미에 대해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 일본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성립 시에 효력을 상실했다”고 각기 다르게 해석하며 완전히 다른 과거사를 그리기로 한 것이다.

물론 1990년대 이후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패전 50주년에 해당하는 1995년 8월15일 담화를 통해 “잘못된 국책으로 인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인해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고 말했다. 여기에 1998년 10월8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우리나라가 과거 한 시기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 지배로 인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한국을 적시해 사과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과는 결코 한반도 강점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한일 병합은 정당했으나 그 후의 식민통치에 여러 문제가 드러나 미안하다는 수준의 언급이다. 한 발 더 나가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은 2010년 8월10일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담화에서 “3ㆍ1 독립운동 등에서의 거센 저항에도 나타났듯이 정치적ㆍ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 사람들은 그 뜻에 반해 행해진 식민지 지배로 인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겨 민족의 자부심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담화는 일제 식민지배의 성격을 가장 진실에 가깝게 술회하고 사과한 것에 틀림없다. 그러나 ‘간 담화’ 역시 일종의 합법부당론, 즉 한일 병합 및 식민지배는 부당했지만 합법이었다는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前條)에 게재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완전히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함을 승인한다.” 1910년 한일 병합조약의 조문은 이렇게 한국이 자발적으로 한국 전체를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에 바치고 일본이 이를 수락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진은 ‘동양평화’를 운운하며 병합을 정당화한 병합조약의 전문(前文).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前條)에 게재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완전히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함을 승인한다.” 1910년 한일 병합조약의 조문은 이렇게 한국이 자발적으로 한국 전체를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에 바치고 일본이 이를 수락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진은 ‘동양평화’를 운운하며 병합을 정당화한 병합조약의 전문(前文).

● 과거사를 봉합하기에 급급한 한국 정부

그렇다면 이러한 일본 정부의 병합조약 합법론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처음부터 불투명했고, 지금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이다. 1950년 주일대표부가 딱 한차례 병합조약의 원천무효를 전제로 한 대일 교섭을 건의한 적이 있었으나 한국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는 외교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병합조약 및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 완강한 만큼, 결과적으로는 해석의 차이를 남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처음부터 다분히 타협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에 대해 당시 유진오 전 고려대 총장과 함께 이 문제에 깊숙이 개입한 김동조 외교부 정무국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한일 병합조약의 무효 확인을 기본조약에 굳이 명문화하려는 것은 실리(實利)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국민적 자존심을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합방’이라는 민족적 수모를 겪기는 했지만 이제 양국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마당에서 문서상으로나마 그러한 치욕의 역사를 씻어 버려야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었다.” 요컨대 한국 정부가 생각한 병합조약 무효의 범위는 국민적 ‘자존심’을 고려해 ‘문서상으로나마’ 치욕의 역사를 씻는 일종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었지, 그 불법성을 따지면서 일본에 식민지배의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물타기’를 거듭한 끝에 한일 양국이 합의를 본 것이 1965년 기본관계조약에 명시된 병합조약 ‘이미 무효’라는 애매한 문구이다.

더욱 희한한 일은 이렇게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봉합된 병합조약 및 식민지배 문제가 이후 단 한 차례도 한일 정부 간에 재론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기 때문에 강제노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도 한국 외교부는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본측이 어떻게 말하든 한국 정부는 ‘이미 무효’를 통해 병합조약과 식민지배가 원천적으로 무효화됐다는 그야말로 한국만의 해석만 국내적으로 되풀이해온 것이다.

무엇보다 여론의 비난을 비켜가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궁색한’ 태도는 당장의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유지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결정적인 제약조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국 정부가 나서서 병합조약 및 식민지배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함으로써 외교문제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면서 ‘강제 노동’을 부인하는데도 오히려 한국 정부는 이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주객전도의 황당한 형국을 한국 스스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 ‘과거사’ 직시하고 ‘인계철선’을 끊어야

한일 간에 병합조약과 식민지배를 둘러싼 해석 차이가 존재하는 한 위안부 문제이건, 강제징용 문제이건 한일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여러 현안은 결코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 물론 한일 양국은 과거에 능숙하게 해왔던 것처럼 이들 문제에 대해서도 각각 다르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적절히’ 봉합하는 수완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언젠가는 다시 터질 수밖에 없는 임시방편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일본은 ‘식민지배=합법’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을 터이고 한국은 일본측이 사태 무마용으로 제공할 ‘성의’를 마치 불법을 인정한 것이라고 선전하며 자기합리화를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일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인계철선’은 한국 정부 스스로 끊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자발적으로 병합조약과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한국 정부는 먼저 1965년 이후 지금껏 유지해온 ‘이미 무효’에 대한 어설픈 해석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외교 문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물론 한국 정부로선 고통스러운 자기반성이자 일본과 역사전쟁을 벌이는 모험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법부(특히 대법원)의 명령에 의해 마지못해 ‘인계철선’을 끊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역사왜곡 운운하며 ‘반성하지 않는’ 일본 탓만을 하기 전에 한국 정부 스스로 과거를 부정해온 ‘궁색한’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는 한 한일관계의 진정한 ‘정상화’는 요원할 것이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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