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석유 소비 매년 7% 급증… 산유국 저주에 태양광 올인

입력
2015.07.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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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전기 등 거의 무료 제공, 24시간 에어컨 등 비효율 극에 달해

태양광 에너지 수출의 꿈… 2032년까지 태양광 시설 완비 목표

장애물도 곳곳 산재, 보조금 조정 국민 반발 이어지고

왕족은 에너지 패권 잃을까 우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태양광 발전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며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우디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를 국가의 존망과 직결된 사안으로 여기고 있다. 전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20%를 보유한 사우디가 석유와 경쟁 관계인 대체 에너지 개발에 나선다는 얘기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사우디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석유 부국의 저주, 사우디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올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 콘퍼런스에서 “사우디는 태양광 발전, 풍력 기반의 전력시장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며 “수년 안에 원유 대신 전기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가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나선 표면적 이유는 석유 보존량 고갈 가능성과 맞물려 각 국가가 에너지 구조를 다변화하면서 이르면 2040년쯤 화석연료 사용이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우디가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해야 하는 이유는 훨씬 절실하고 급박하다. 산유국인 사우디가 지난 수십 년간 막대한 원유 보유량에 의존해 유지해왔던 국내의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구조가 국가경제를 붕괴시킬 만큼 한계치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는 수혜에 가까운 에너지 보조금 정책을 통해 자국 소비자들에게 휘발유와 전기 등을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사우디에서 휘발유는 현재 1갤런 당 약 0.5달러에 구입할 수 있다. 원화로 계산하면 1리터 당 약 152원 정도인데, 한국에서 휘발유가 1리터 당 약 1,580원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그 가격이 10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전기세도 1 킬로와트(㎾) 당 단돈 1센트(11원)만 부과하고 있다.

사우디가 값싼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었던 건 석유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막대한 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에서 수십 년 간 이어진 이 같은 에너지 정책은 자국민들의 에너지 소비구조를 방만하게 만들었다. 사우디 시민들은 싼 휘발유 값 탓에 경차를 타는 대신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중형이나 대형차 위주로 구입했고, 집에서는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놓는 게 생활화됐다. 사우드 수도 리야드에 들어선 고층건물들에는 내부 냉방을 유지하기 위한 외벽 절연시설이 전혀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절연 시설이 없어도 건물 내부의 냉방시설을 유지하는데 비용 면에서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석유 가격이 낮다 보니 사우디는 현재 전력도 석유를 태워서 생산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영국 등 대부분의 국가가 저효율과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수십 년 전에 포기한 방식이다. 이들 국가에서 전력 생산은 주로 원자력발전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사우디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낭비적인 에너지 소비구조는 석유왕국 사우디조차도 점차 감내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사우디는 자국의 총 석유생산량 중 약 20%를 전력 생산과 차량 휘발유 공급 등을 위한 국내 소비용으로 돌리고 있는데, 국내 소비량이 매년 약 7%씩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기업과 가정용 냉방시설에 의한 에너지 사용량은 살인적인 수준이다. 단적으로 2013년 한 해 동안 사우디가 소비한 총 전력량 중 약 70%가 에어컨에 소모됐다. 사우디 인구가 약 3,000만 명에 불과하지만 국내 석유 소비량이 전세계 국가 중 6위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사우디의 에너지 소비구조가 얼마나 기형적인지를 말해준다.

수많은 국제 연구보고서들은 사우디에 끊임없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2011년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 하우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가 지금과 같은 에너지 소비구조를 유지할 경우, 사우디의 국내 석유 소비량은 2021년에는 사우디의 석유 수출량과 맞먹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2038년에 이르면 사우디는 석유 수출국에서 석유 수입국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으로 사우디가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나서야 하는 데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값싼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국영기업인 사우디전력에 배럴 당 약 4달러에 석유를 구입할 수 있도록 혜택을 주고 있다. 문제는 국제유가가 배럴 당 약 60달러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사우디가 수출을 포기하고 석유를 내수로 돌릴수록 배럴 당 약 56달러씩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사우디가 정부 재정의 90%를 석유 수출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셰일가스 등의 영향으로 전세계적인 석유 수요가 줄면서 사우디는 지금과 같은 경제 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위기감에 직면하고 있다.

사우디, 대체 에너지 개발 박차

이에 따라 사우디는 석유 중심의 에너지 구조에서 탈피하는 방법으로 신재생 에너지인 태양광에 주목하고 있다. 광대한 사막과 뜨거운 태양을 갖고 있는 사우디는 전세계에서 태양광 발전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특히 태양광 에너지 가격은 초기에는 막대한 생산비용으로 경제적 이해타산이 맞지 않았지만 그 동안 기술발전이 이뤄지며 약 80% 가까이 하락한 상태여서 수출 경쟁력도 확보된 상태다. 전세계 제조업을 이끌고 있는 중국과 인도 등이 태양광 에너지 사용을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관련 설비를 수입할 국가들도 함께 늘어나는 등 수출 여건도 좋아지고 있다.

또한 태양광 에너지 개발이 성공할 경우 사우디의 청년 일자리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는 석유 수출에 의존하면서 제조업이나 전자 등 제대로 된 산업 기반을 일구지 못했다. 특히 사우디 국민의 60% 이상은 30대 전후여서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사우디가 태양광 발전 설비공장을 가동하고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 수출 영역을 확대하면 막대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의 최종 목표는 원대하다. 사우디는 석유 수출국에서 태양광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모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석유를 통해 전세계에서 에너지 패권국의 지위를 누렸다면 이번에는 태양광을 선점해 신재생 에너지로 그 명성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지난 2012년 태양광 에너지 개발에 대한 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2032년까지 약 41 기가와트(GW)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전력 시설을 갖춘다는 목표다. 현재 독일이 갖춘 태양광 전력시설과 맞먹는 규모로, 사우디의 태양광 전력 생산수준은 2012년 기준으로 전세계 총 생산규모의 약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태양광 개발에 사우디의 모든 국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사우디 정부는 현재 페르시안 해안을 따라 대규모 태양패널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태양전지의 재료가 되는 폴리실리콘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공장들이 올해 우선 들어서고, 내년에는 사우디 국영기업이자 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 아람코와 전력공사인 사우디전력이 합작을 통해 태양광 발전산업과 관련한 10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사우디 태양광 발전의 한계.

하지만 태양광 에너지 수출국이라는 사우디의 원대한 계획이 실현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사우디가 태양광 발전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심각한 모래 폭풍은 사막에 널어놓을 태양광 발전설비인 수많은 태양 패널들을 손쉽게 손상시킨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태양광을 개발하기 위한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도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태양광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부품은 대부분 유럽에서 만들어지며, 태양 전지의 원료가 되는 폴리실리콘은 대만에서 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우디는 최근 유럽으로부터 태양 패널을 선박을 통해 수입했는데 사우디 공항에서 수 개월 동안 보관됐다가 높은 열기에 모두 녹아버리는 낭패를 겪었다. 국산화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태양광 에너지 수출국으로의 패권을 갖겠다는 사우디의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사우디가 석유에서 신재생 에너지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과정도 수월하지 않아 보인다. 사우디는 지난 한 해 동안 에어컨 사용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효율 기준을 높였고, 자동차에 연료 효율등급의 기준도 매겨 보조금 지원 조정에도 나섰다. 새로 짓는 고층빌딩에 한해 절연 설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했으며, 지난 3월에는 한국과 2개의 원자로를 건설하는 원자력 협력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은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 보조금 부과 등에 당장 자국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이 커질 경우 기존 석유를 통해 유지했던 에너지 패권국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을 사우디 왕족들은 우려하고 있다. 실제 사우디 중앙은행은 지난 2월 성명을 통해 정부가 보조금 정책에 점진적 변화와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세계은행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GDP의 10%(약 800억 달러)보다 더 많은 예산을 에너지 지원 보조금에 쓰고 있다. 사우디 정부 관계자는 “이 같은 예산 규모는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정도”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장애가 산적한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밀어붙이는 데에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올해 12월 파리 기후변화 총회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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