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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여친과 함께 가는 여름휴가 걱정됩니다

입력
2015.07.22 09:15

Q 저는 직장생활 3년차이고, 여자친구와는 사귄 지 반년쯤 되었습니다. 입사 후에 휴가다운 휴가는 이번에 처음 써보는 것 같네요. 여자친구와 시간을 맞춰서 여름휴가를 같이 가기로 했는데, 가기 전부터 걱정이 되는 건 왜일까요? 평소에 데이트할 때도 서로 의견이 달라 티격태격할 때가 많은데, 멀리 여행까지 가서 스트레스 받을까봐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모처럼의 휴가를 잘 보내고 올 수 있으려면 어떤 것들을 기억해야 할까요?

모든 걸 훌훌 버리고 떠나는 둘만의 여행. 그러나 현실이 로맨틱 하지만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걸 훌훌 버리고 떠나는 둘만의 여행. 그러나 현실이 로맨틱 하지만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A 문득 '제주도의 푸른밤'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네요. '떠나요 둘이서 모든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밤 그 별 아래'라는 가사요. 노래만 들을 땐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 그저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이 들리죠. 실제로 이 노래 때문에 여행을 가게 되는 커플도 많지 않았을까 싶고요. 생각해보면 함께 떠나는 여행만큼 로맨틱한 데이트도 흔치 않죠. 갑갑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꿈같이 달콤한 휴식을 함께 즐기는 일을 함께하는 사이라는 건, 그 자체로 축복받은 관계처럼 여겨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정말로 둘이 떠나는 여행이 그저 로맨틱하기만 할까요? 언제나 이상과 현실은 괴리되기 마련이죠. 부푼 맘을 안고 여행을 갔다가 오히려 싸우고 돌아오는 커플들을 심심찮게 마주하게 되는 건, 여행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특별한 정황들 때문이고, 이 정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떠나는 여행이란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에 그다지 좋지 못한 영향만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꿈결같길 바랬던 여행이 악몽이 되기 쉬운 이유, 그건 집을 떠나는 순간 얻어지는 자유만큼 커지는 불안과 긴장 때문일 겁니다. 나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뭔가를 한다는 건, 어떤 예측불가의 상황이 펼쳐지든 그것에 원하는 만큼 대처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요. 제 친구 중 한 명은 애인과 함께 해외여행을 갔다가 그만 오토바이 소매치기를 당해 신용카드와 핸드폰까지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처음엔 서로 위로를 하긴 했지만 현지 경찰서에 갔을 때 제대로 말 한마디도 못하고 당황하기만 하는 모습에 많이 실망했었다는 경험담을 전하기도 했답니다. 갑자기 일어난 사건 하나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실망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 버린 것이죠. 꼭 이런 사건까지 경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며칠씩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실망할 일도 더 빨리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몇 시간 동안의 데이트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서로의 습관이, 여행에서는 더 빨리 노출되는 셈이죠.

여행은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또는 '얼마나 비슷한지'를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여행은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또는 '얼마나 비슷한지'를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불안과 긴장 못지 않게, 두 사람의 여행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옵션이 너무 많다는 거죠. 여행은 삶에 대한 가치관을 드러내는 꽤 강렬한 기회의 시간이어서,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혹은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꽤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거죠. 여행 왔으니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녀야 한다는 사람과 여행 왔을 때라도 아침에 푹 자야 한다는 사람이, 숙소는 무조건 고급 숙소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숙소비용을 아껴 좋은걸 먹어야 한다는 사람이 싸우지 않고 여행하는 일이란 쉽지 않을 겁니다.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다는 건 언쟁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말이며, 생각이 다르지만 싸우지는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은 충분한 배려와 다소의 내공이 필요한 일일 테니까요.

'와, 이 사람이 나랑 생각이 달라 사사건건 부딪히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계시다니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로지 걱정을 통해서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가'를 느낄 수 있다는 건 나를 이해하고 또 상대방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는 거니까요. 다만 그렇게 서로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게 되었을 때, 여행지에 가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필요한 언쟁으로 치닫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여행을 처음으로 계획하는 그 순간부터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상시에 어떤 스타일의 여행을 선호하는지, 이번 여행을 통해서 어떤 것을 추구하고 싶은지, 가장 좋았던 여행은 어떤 것이었는지 등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 대해 깊이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여행지에 갔을 땐, 일방적으로 어떤 사람이 리드하는 방식이나, 매번 의견이 하나로 일치될 때까지 애쓰는 것보다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한 번씩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방식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서로 기분 좋게 한 번씩 양보하다 보면, 상대방의 기호도 더 잘 인정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테니까요. 부디, 이번 여행 행복하게 다녀오시길.

연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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