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강제노역 미국에만 고개숙여

입력
2015.07.2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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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영국 등 유사 피해자엔 사과 의향 묻자 침묵으로 일관

내달 종전 70년 아베 담화 앞두고 우호 분위기 조성 위한 포석 분석도

기무라 히카루(木村光 왼쪽에서 두 번째) 일본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 상무가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비젠탈 센터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인 미국인 제임스 머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기무라 히카루(木村光 왼쪽에서 두 번째) 일본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 상무가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비젠탈 센터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인 미국인 제임스 머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이 일본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을 했던 미국인 전쟁포로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한국 중국 영국 등 당시 유사한 강제노역을 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의향을 묻자 침묵으로 일관해 관련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BBC는 19일 미쓰비시 머티리얼 대표단이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위치한 국제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비젠탈센터에서 열린 행사에서 “과거 미쓰비시가 운영했던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한 미국인 전쟁포로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제임스 머피(94)씨는 이날 행사에 참석해 “영광스러운 날”이라며 “우리는 70년 동안 이 날을 기다렸다”고 소감을 밝혔다. 머피씨는 “사과 성명이 매우 진심 어리고 공손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제 일본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더 깊은 우정을 나누며 더 단단한 결속을 다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머피는 금전적 배상은 없지만 이번 사과가 “중대한 진전”이라고 만족해 했다. 미쓰비시 대표단과 머피씨는 이날 사과와 용서의 뜻으로 악수를 했다.

머피씨는 1942년 필리핀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하나와에 있는 동광산에서 1년 동안 강제노역을 했다. 그는 과거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시의 경험이 “끔찍하게도 참혹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음식 약 옷 위생시설 없이 하루하루 노예처럼 지냈다”며 “미쓰비시가 미군에 대항하는 전투기를 만드는 회사라는 사실을 알고 더 화가 났다”고 기억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전신인 미쓰비시 광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내 4곳의 광산을 운영했다. 이 광산 강제노역에 동원된 전쟁포로는 수천명에 달하며 미국인 전쟁포로는 500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시간이 많이 흘러 현재 소재가 확인된 미국인 전쟁포로 생존자는 단 2명으로, 머피씨만이 LA까지 이동 가능해 생존자로서는 그가 유일하게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고 미국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이번 사과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본 정부의 집단자위권 법안 강행처리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높은 가운데 이를 무마하려는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달 종전 70년을 맞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담화 발표를 앞두고 우호적 분위기 조성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 정부는 게다가 이미 5년 전 미국인 전쟁포로의 강제노역 동원을 공식 사과했다. 미쓰비시는 또 이번 행사에서 미국을 제외한 한국 중국 필리핀 영국 등 다른 국가의 강제노역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았다.

기무라 히카루(木村光) 미쓰비시 머티리얼 상무는 이날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언급이 빠진 데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넘어갔다. 사과 의향을 묻자 “현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징용과 관련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의견을 밝히지 않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영국인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가족들도 직접적인 사과를 원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18일 전했다. 아버지 제임스 깁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쓰비시 동광산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됐었다는 영국인 샌디 깁슨은 “미쓰비시를 포함해 전쟁포로를 강제노역에 동원했던 일본 기업들은 모두 가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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