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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중심에서 평화와 존엄을 외치다

입력
2015.07.03 16:19

인권광장서 위안부 문제 해결촉구 수요시위

멈춰선 관광객들 "일본정부 사죄해야" 공감

세계 1억인 서명 캠페인에도 동참 이어져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이 1일 프랑스 파리의 인권광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열고 있다. 조진섭 사진작가 제공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이 1일 프랑스 파리의 인권광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열고 있다. 조진섭 사진작가 제공

7월의 첫 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23년째 이어온 ‘수요시위’가 열리는 날이죠. 우리는 프랑스 파리의 한복판, 에펠탑이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이는 인권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파리에서 네 번째로 열리는 수요시위를 위해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집회신고도 미리 해 두었습니다.

전날 40도에 달하는 뙤약볕 아래서 수요시위에 선보일 평화캠페인과 플래시몹 등을 종일 연습한 탓에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오전 10시 캠프장을 출발하기 직전까지 동작을 맞춰 보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날도 폭염이 계속됐습니다. 다행히 평소에는 심한 체증에 붙들려 있던 차량의 행렬이 이날따라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스르륵 흘렀습니다.

1,185차 수요시위는 이날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도, 김복동 할머니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 등이 방문 중인 미국 워싱턴DC의 일본대사관 앞에서도 열렸습니다. 드디어 낮 12시. 우리는 십 수년 간 수요시위의 시작을 알린 노래 ‘바위처럼’에 맞추어 율동을 하며 인권광장을 오가는 세계인들의 시선을 붙들었습니다.

파리 수요시위에는 아주 반가운 손님 한 분이 함께했습니다. 멀리 일본에서 오신 오쿠다 선생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간사이네트워크’ 공동대표이며, 지난 겨울 일본으로 날아갔던 희망나비 일본평화기행단을 물심양면 도와주셨던 분입니다. 고령의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와 주신 선생님의 감동적인 말씀으로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오늘 나는 일본의 간사이네트워크의 대표 자격으로 파리의 인권광장에 희망나비와 함께 있습니다.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유럽의 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에 나설 때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목청 높여 외쳤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전쟁야욕을 중단하라!” 광장을 울리는 우리의 외침에 사람들이 발길을 멈춰 섰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을 든 두 팔을 높이 뻗었습니다. 그리고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들, 국내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계실 할머니들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하며 더 크게 외쳤습니다. 뙤약볕에 볼이 빨갛게 익고 온몸은 땀범벅이 됐지만, 주먹을 꽉 쥔 채 팔을 높이 들며 구호를 외치는 단원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범죄가 국제법을 어긴 반인도적 범죄임을 인정하라!”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법적으로 배상하라!”

“우리는 이 땅의 모든 전쟁과 성폭력을 반대한다!”

수요시위를 마치고 사람들이 흩어지기 전에 바로 플래시몹을 진행했습니다. 국내에서, 공항에서, 캠핑장에서, 노르망디 캉에서 수없이 연습한 상상백도씨의 ‘셔플아리랑’을 선보이자 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마지막 동작을 마치고 준비해 온 현수막을 든 채 ‘나비날다 파이팅!’을 외치는 단원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이어 평화를 상징하는 대형 걸개그림을 펼치고, 사람들에게 세월호 리본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1억인 서명 캠페인의 취지를 알리고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습니다.

파리에 사는 한 외국인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슬픈 일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숨기려 하지 말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고, 한 관광객은 “정의는 결국 실현될 것”이라며 우리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서명용지의 빈칸들은 세계인들의 이름으로 하나 둘 채워져 갔습니다.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 단원들이 1일 파리 인권광장에서 수요시위에 이어 진행한 평화캠페인에서 세월호 추모 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 단원들이 1일 파리 인권광장에서 수요시위에 이어 진행한 평화캠페인에서 세월호 추모 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파리의 중심, 인권광장 한가운데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전쟁 반대, 평화 염원”을 당당하게 외치면서 느꼈던 감격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준 세계 각국 사람들의 가슴 따뜻한 응원으로 우리는 진정한 ‘희망나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한 단원은 “이런 노력이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앞당기는 데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는 딴판인 시위 환경이 부러웠다는 단원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수요시위를 하면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서 가로막고 서 있는데, 여기에선 인상 좋은 경찰관 아저씨 한 분만 나와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경찰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외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평화캠페인을 마치고 뒷정리까지 서너 시간을 뙤약볕 아래에 있으나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계속 보태겠다는 다짐은 더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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