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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르망디 캉에서 평화염원 플래시몹 펼치다

입력
2015.06.30 10:45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이 지난 28일 프랑스 북서부 캉의 생 키에르 성당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및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이 지난 28일 프랑스 북서부 캉의 생 키에르 성당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및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플래시몹을 펼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모임 ‘희망나비’의 2015 유럽평화기행 소식을 연재합니다. 지난 25일 서울을 떠난 34명의 평화기행단은 7월 14일까지 유럽 6개국을 돌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해결 촉구를 위한 세계 1억 명 서명운동 등을 펼칩니다.

지난 28일 오전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의 중심도시 캉(Caen). 파리의 캠프장에서 이른 아침을 지어먹고 차로 3시간을 달려 온 우리는 생 키에르 성당 앞에 줄지어 섰습니다. 이번 기행의 첫 거리 캠페인을 앞두고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낮 12시가 지나자 성당 문이 열리고 일요 미사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 나왔습니다.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입니다. 2차대전의 아픔은 이곳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곳으로 날아온 코리아의 청년들입니다.”

우렁찬 목소리의 인사말과 함께 준비해 온 플래시몹을 펼쳤습니다. 플래시몹은 아리랑의 대중화ㆍ세계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문화단체 상상백도씨에서 선보인 ‘셔플아리랑’ 음악에 맞추어 진행됐습니다. 희망과 평화를 상징하는 나비의 날갯짓을 형상화하기 위해 부채춤도 준비했습니다. 세 번의 사전합숙에서, 그리고 경유지 공항과 파리의 캠프장에서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율동을 틀리기도 하고, 옷이 흘러내려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툰 몸짓에 담긴 우리의 진심은 전해졌던가 봅니다. 전쟁 통에 세상 빛을 보았을지 모르는 노부부부터 철부지 아이들까지, 거리의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생 키에르 성당의 미셸 주임신부님, 이날 미사를 집전한 필립 신부님은 우리를 뜨겁게 맞아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에게는 정말 친한 한국친구가 있습니다. 한국말은 잘 모르지만, 해!산! 정도는 알아요.(웃음) 제가 ‘신부’라는 것도 압니다. 평화와 박애의 산 증인이 되어 프랑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부님들은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무대였던 캉이 아이러니하게도 연합국의 폭격에 의해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됐던 아픈 역사를 전하며 “‘고통이 나를 짓밟았지만 박애가 나를 다시 살렸다’는 문장처럼 우리는 박애의 정신으로 이 도시를 재건했다”고 말했습니다. 멀리서 온 청년들을 위한 축복의 말씀도 잊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 부채의 움직임이 마치 나비와 같았습니다. 감명 깊었습니다. 평화를 위한 여행을 잘 마치길 기원합니다.”

유럽평화기행단원들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펼쳐졌던 캉의 아픈 역사를 설명하는 생 키에르 성당의 신부님들.
유럽평화기행단원들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펼쳐졌던 캉의 아픈 역사를 설명하는 생 키에르 성당의 신부님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모임 ‘희망나비’는 2013년 12월 결성됐습니다. 지난주 1,184차까지 진행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참여, ‘위안부’ 피해 할머니 방문, 독서ㆍ토론 모임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희망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넘어 평화ㆍ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계신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아 국제연대활동에도 적극 나서게 됐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두 분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들과 함께 몇 해 전부터 세계 각지를 방문해 각국 정부와 의회, 시민단체 등과의 만남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해 왔습니다. 이제 저희 젊은 세대가 그 뒤를 이어 평화를 향한 희망나비의 날개를 힘차게 펼쳐야 할 때입니다.

2015 유럽평화기행 ‘나비 날다’에는 기말고사를 포기하고 온 중3 학생부터 졸업을 앞두고 유럽여행을 준비하던 대학생, 다른 삶을 꿈꾸며 직장을 그만둔 젊은이 등 34명이 참가했습니다. 지난 25일 밤 파리에 첫발을 내디딘 기행단은 7월 14일까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스위스 등 6개국에서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및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를 호소할 예정입니다.

희망나비 평화기행단은 캠프장 텐트에서 잠을 자고 직접 밥을 지어 먹으며 19박20일의 여정을 이어간다.
희망나비 평화기행단은 캠프장 텐트에서 잠을 자고 직접 밥을 지어 먹으며 19박20일의 여정을 이어간다.

공식 일정 첫 날인 26일 오전에는 파리 소르본대학교를 찾아 평화 활동에 힘써 온 세계적 석학인 장 살렘(Jean Salem) 철학과 교수로부터 1ㆍ2차 세계대전 역사 강의를 들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부친의 일화, 유대인 출신이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조국, 민족이 잘못된 길을 갈 때 그것을 비판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 것입니다. 이날 오후에는 프랑스 상원의회 세나(Sénat)를 방문해 ‘파리나비’ 회원이자 의회 고위공무원인 브노아씨의 안내로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27일에는 파리코뮌의 역사가 깃든 페흐라셰즈(Pere Lachaise) 묘역, 2차대전 발발 전 유럽을 휩쓴 파시즘을 막아냈던 프랑스 반파쇼인민전선의 지도자이자 사회당 당수를 지낸 레옹블룸 이름을 딴 광장을 찾았습니다. 이어 프랑스대혁명 기념탑이 자리한 바스티유 광장과 프랑스 최고재판소 팔레 드 쥐스티스(Palais de Justiceㆍ정의의 전당)를 방문하러 가던 중 시위대의 행진에 길이 막혔습니다. 형형색색 무지개깃발이 펄럭이는 퀴어문화축제 행진이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 덕에 더 많은 인파가 모인 듯 행진의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당함과 흥겨움이 가득했던 그 광경은 우리에게 ‘차별과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토론해 봐야겠다는 또 다른 과제를 던져주었습니다.

평화기행단은 19박 20일 동안 캠프장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고 하루 세끼 식사도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손수 지어 먹기로 했습니다. 방문지 가운데는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이 많아 렌트한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며 이동합니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 탓도 있지만, 평화기행의 취지가 그렇듯이 참가자들 모두가 작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함께 길을 내고 어려움을 헤쳐가는 여행을 만들자는 취지에서입니다. 방문지 선정과 캠페인 내용 등 준비 과정을 모두가 함께했고 사전 합숙을 통해 공부도 제법 했건만,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 부딪치는 크고 작은 난관들이 수두룩합니다. 이 기행을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를 즈음엔 우리 모두가 한 뼘 정도는 성장해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일보닷컴을 통해 전하는 평화기행단의 여정을 계속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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