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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어떤 여자'를 피해야 하나요?

입력
2015.06.23 11:16

Q 아직은 솔로지만 서른 살 즈음에는 꼭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싶은 28세 남성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꼭 이루고 싶지만 주변에 보면 결혼때문에 더 힘들어지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런 여자와 결혼하면 안된다'라는 것에는 정답이 있지 않을까요? (관련칼럼▶ 그 남자의 '조건'을 따져보기 전에)

A 수많은 하객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그 수많은 커플들 중에, '우리는 어쩌면 이혼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 좋으니까 결혼하긴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커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지금의 이 약속이 어떤 상황에서든 잘 지켜지길 기대하고 또 맹세하죠. 하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가요. 서로에게 반해 사랑을 약속하고 미래를 함께 하기로 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혼을 선택해 현재 한국의 조이혼율(인구 천명당 이혼건수)은 2.72건으로 아시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이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네요.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과 결혼을 했을 때 그 결과가 안좋을 수 있는지 콕 짚어 리스트업 해달라는 주문에, 유독 높고 또 점점 높아지는 이혼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실 당신의 질문에 대해 '동문서답'부터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연애에 대해, 결혼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럴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질문이 당신이 하는 질문과 비슷한 것들이거든요. '어떤 사람과 연애해야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과 결혼하면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죠?'와 같은 것들... 할 수 있는 한 모든 위험과 불행을 피해가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히 이해받아야 하겠죠. 하지만 원하고 바라는 것을 기준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삶과, 두려움과 불안을 피하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선택기준이 되는 삶은 분명 그 결이 다르지 않을까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더 나은 삶을 살기가 어렵고, 양극화와 무한경쟁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잠시만 다른 데로 눈을 돌려도 낙오되며, 사회 시스템이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다는 절망감은 '좋은 선택은 차치하고라도 최악의 선택만은 피해보자'는 결론을 낳는 것 같습니다. 함께 행복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을 찾는 일보다, '어떤 사람을 피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더 많이 나오는 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요. 불안에 잠식당한 사회를 살아가는 이유로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작가에 열광하고, 어떤 노래를 즐겨 듣는 사람인지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눈에 보이는 성취, 연봉이나 집 평수처럼 숫자로 측량할 수 있는 가치로 판단하는 것이 훨씬 확실한 보증수표가 되는 거죠.

다시 이혼율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행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결혼이 슬픈 결론으로 끝나게 되는 사건이란 말이죠, '어떤 사람을 만나야 최악을 피해갈 수 있을까'라는, 즉 행복을 공유할 파트너에 대한 고찰이 아닌 불안을 없애줄 누군가에 대한 갈망에 지배당하는 순간 이미 시작됩니다. 유독 높고, 점점 높아지는 우리의 이혼율이란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불안에 잠식되어버렸다는 의미는 아닐까요. 행복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과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결정할 때 현명한 선택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는 채로 하는 선택이란 오히려 얄팍하여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기가 쉽죠.

'어떤 여자를 피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애초에 어떤 답을 기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낭비벽이 있고 명품을 사랑하는 여자', '너무 드세고 말싸움하면 져주는 법이 없는 여자', '아는 남자사람친구가 너무 많은 여자'처럼, 술자리 뒷담화에서 들었을 법한 특정한 유형의 여성을 머릿속에 설정해두고 질문하셨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을 피하고, 걸러내고, 색출해 내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당신의 마음을 뛰게 한 어떤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차분히 느껴보는 일, 결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가정의 모습이 비슷한 사람인지 차분히 따져보는 일 같은 것들이요. 불안함에 잠식당하지 않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저 불안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선택하는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연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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