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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세 단어는 부부 갈등 녹이는 마법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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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0년 차 맞은 워킹맘
서로 상처 주는 소통 방식 탓
남편과 대화 거의 안 해
남편에 먼저 다가가자
말씨·눈빛 부드러워져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이상하게 삐그덕거린다. 한 이불을 덮고 자지만, 심리적 거리는 대척점에 선 듯 멀기만 하다. 부부 관계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의 구심점이다. 때문에 부부의 갈등은 절대 둘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남보다 못한 처지가 된 부부가 내뱉는 날카로운 말은 연쇄적으로 가족 전체의 소통을 얼어붙게 한다.
사단법인 은행나무부부상담센터의 지난해 부부 및 가족상담 통계(총 138건)를 보면 부부갈등 및 관계악화(부부정서 및 생활 부적응, 41건) 상담이 가장 많았다. 이어 이혼요구 및 고려(24건), 부부간 성격차이(22건) 등 정서적 갈등에서 오는 부부관계 상담이 주를 이뤘다. 정서적으로 밀착하지 못한 관계는 바로 불통으로 이어진다.
30대 후반의 고교 교사 박영은(가명)씨는 여섯살, 다섯살 남매를 키우는 워킹 맘이다. 올해로 결혼 10년차를 맞지만 남편과 대화가 거의 없다. 서로 상처가 되는 소통 방식 때문이다. 박씨에게 지난달 21일부터 남편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당시의 상황, 느낌을 정리하도록 했다. 박씨의 목소리를 통해 부부 간의 대화를 재구성했다.
#5월 21일(목) 아침 출근시간
아내 : 나 오늘 회식이라 늦어요.
남편 : 알았어.
아내 : 냉장고에 사과랑 귤 깎아놨으니 애들 좀 먹여요.
남편 : 알았어. 나 주말에 회사 사람들이랑 등산 가.
아내 : 차는 회사에 놓고 다른 차로 가는 거예요? 아님 각자 차 가지고 가나?
남편 : (귀찮다는 듯이) 어휴, 별게 다 궁금하다.
보통은 일찍 퇴근하지만, 이날은 회식이 늦게까지 이어져 밤 11시가 넘어 귀가하게 됐다. 아이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고, 아이 둘을 챙기느라 지쳤을 남편에게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 남편은 “야! 애들 깨잖아. 문을 그렇게 세게 닫으면 어떡해”라고 짜증을 냈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고맙다’는 말은 쏙 들어가 버렸다.
#5월22일(금) 저녁시간
아들 : 아빠 게임 하네. 나도 하고 싶다.
엄마 : (직접 말하지 않고 아이를 통해) 아빠한테 게임 하지 말라고 해
6살 아들 : 아빠 게임 하지 마요. 나도 하고 싶어요.
아빠 : 게임 하나 맘대로 못하게 하냐.(짜증 내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다시 게임)
부부의 대화가 왜 이렇게 됐을까. 대화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은 첫 아이 출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큰 아이를 낳았을 때 3개월 출산휴가만 쓰고 복직한 나는 직장생활과 가사노동으로 고된 시기를 보냈다. 학교 방학 시작을 하루 앞둔 날. 이제 아이도 챙기고 여유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이제 하루만 참으면 돼.” 위로와 공감의 말을 기대했지만 남편의 대답은 퉁명스러운 한 마디였다. “야, 징징대지 좀 마라.”
‘쿵’ 하고 마음의 문이 닫히는 느낌이었다. 그 후 남편과 특별한 용건 없이 그냥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우리는 정말 뜨겁게 연애했다. 유쾌하고 리더십있는 남편은 4년간 연애 시절 내내 다정다감한 남자로 이상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직업적 비전이나 학력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신혼 때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이 남자에 대해 아는 게 없었구나 하는 절망감도 자주 들었다. 집이 조금만 더럽거나 정리가 안 돼 있으면 남편은 짜증 섞인 날 선 언어로 비난했다. “집이 지저분한 것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걸 알면서, 그게 뭐 어렵다고 안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지만 집안일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선 결벽증에 가까운 남편의 바람대로 집안을 청소하긴 벅차다. 남편은 깔끔한 성격 탓에 집안일을 곧잘 하지만, 어김없이 지청구가 뒤따라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점점 말수가 줄어든 남편은 “잡은 물고기에 먹이 주는 거 봤냐”고 눙쳤지만, 무뚝뚝한 시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절망감마저 들었다. 영업직으로 밖에서 과도한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남편은 직업 특성상 스트레스가 심했다. 피로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쏘아붙이는 말투에 나 역시 상처를 받게 돼 점점 말 붙이는 횟수가 줄었다. 남편은 술 한잔 걸친 날이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 못되게 툭툭 튀어나온다”며 이해해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 말 마저 곱게 들리진 않는다.
결혼 전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도 한 시간 넘게 통화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결혼 후에는 대화가 단절됐다. 이제 우리 부부는 정말 꼭 필요한 말만 한다. 아이들 때문에 어느 정도의 대화는 하지만 부부관계는 서걱거린다.
다만 유일한 소통창구가 있다면 캠핑이다. 남편은 격주로 캠핑 계획을 세울 정도로 캠핑에 빠져있는데, 항상 두세 가족이 함께 다닌다. 캠핑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남편의 모습은 결혼 전처럼 유쾌하다. 유머로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끌고, 아이들과도 곧잘 놀아준다. 잠시 대화가 되는 듯하지만 그 때뿐이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대화 없는 부부가 된다.
부부관계가 하루 이틀 만에 개선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상대방을 인정ㆍ공감ㆍ칭찬하며 의도적으로 대
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씨에겐 대화에서 따뜻한 표현을 쓰도록 권했다.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의 세 단어는 부부 갈등을 녹이는 마법의 열쇠라는 것이다. 실험을 통해 아내가 먼저 다가갔고, 남편도 외면하지 않았다.
6월7일(일) 남편이 해외 출장 후 귀국해 돌아옴
아내 : 안 힘들었어요? 고생이 많았어요.
남편: (메르스 때문에 시댁 식구들에게 안부 전화한 이야기를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고했어.
6월8일(월) 메르스 관련 뉴스를 보며 대화
아내 : 회사에 가면 여러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 다 만날텐데, 조심해요.
남편 : 알았어. 그런데 당신 학교는 휴교 안 해? 걱정이다.
아내 : 아직 그런 얘기는 없어요.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햄버거랑 샌드위치 있는데 아침으로 뭐 먹을래요?
남편 : 햄버거 데워주면 먹을게.
아내 : 데워줄게요. 바빠서 밥 못 챙겨줘서 미안해요.
남편 : 알았어. 괜찮아.
6월9일(화) 아침 출근시간
아내 : (옷을 보여주며) 오늘 이렇게 입고 출근하려 하는데 괜찮아요?
남편 : 응.
아내 : 알았어요. 이거 입을게요. 고마워요.
남편 : 오늘 회식이라 좀 늦어.
아내 : 알았어요.
남편 : 아 참. 그리고 이번 주말에 캠핑 가기로 했어. 메르스 때문에 걱정이긴 한데, 오히려 맑은 공기 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내 : 알았어요. 예약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그럼 오늘도 수고해요.
남편 : 응.
오랜 기간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했던 남편의 말투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박씨는 “그래도 말씨와 눈빛은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그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다시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 전문가 조언
오랜 갈등으로 서로 담을 쌓고 살게 된 A씨 부부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떤 진단을 내릴까? 이들은 다시 부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해결사로 강기정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계선자 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장이 나섰다. 다음은 그간 수 백 쌍 부부를 상담 해 온 이들 전문가들이 내놓은 부부 갈등 솔루션.
▦성격 차이를 인정하라
A씨 부부는 성격 차이가 커 보인다. 남편이 가부장적이고 다소 무뚝뚝한 반면 아내는 대화를 중시하다 보니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불만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남편의 말투를 퉁명스럽다고 느낀 아내가 대화 자체를 포기하면서 부부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강 교수)
차이를 인정하는 대신 서로의 성격에 대해 속단하는 것도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사례의 아내는 남편이 시아버지를 닮아 ‘무뚝뚝하다’, ‘욱하는 성격이다’라고 단정한다. 남편 또한 자기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아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계 교수)
결혼하기 전 20년 넘게 각자 방식으로 살아 온 부부 사이에 성격차이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결혼 후 서로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상실단계’를 밟게 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 단계를 극복하는 게 건강한 부부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강 교수)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라
A씨 남편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균등한 부부간 역할분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직장일과 가사를 모두 도맡으면서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에 비해 직장의 업무와 중압감이 훨씬 높다고 느낄 수 있다. 부부가 각자의 상황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가정 내 역할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강 교수)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소통하라
근본적인 해법은 역시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의 핵심은 경청과 표현하기, 질문하기다. 사례의 남편은 결혼 후 용건 없는 전화에 짜증을 내고 아내는 아내대로 대화를 지레 포기하고 있다. 심지어 아들을 통해 남편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는데 이 같은 대화법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아내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계 교수)
미국의 저명한 부부 상담 전문가 존 고트만 박사는 안정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는 대개 한 번의 부정적인 행동(비난, 무시)에 다섯 번의 긍정적인 행동(칭찬, 선물, 공감)을 한다고 보고했다. 평소 서먹하던 부부가 상대를 칭찬하기는 매우 어색하겠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강 교수)
▦강점을 이용하라
이 부부는 발전 소지가 다분하다. 남편은 자녀 목욕도 시키고 청소도 잘 해놓는 등 비교적 가정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다. 아내 역시 ‘고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는 말로 미뤄봤을 때 애정이 식지 않은 상태다. 캠핑 때 평소 나누지 못한 대화를 한다는 점에도 부부 관계를 발전 시킬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캠핑을 이용해 마법의 대화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이 세 단어는 이 세상 모든 부부 갈등을 녹이는 마법의 열쇠다.(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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