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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내와 자녀 사이 '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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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어머니가 학습 결정권
공연히 간섭했다간 공동의 적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금융회사 팀장 A(47)씨는 최근 부부싸움을 했다. 아내의 성화에 매일 학원을 마치고 밤 10시 넘어 귀가하는 아들을 데리러 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단 10분 거리의 집까지 오는 동안 피곤하다며 차 안에서 눈을 붙인 아이가 측은해 학원을 잠시 쉬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대뜸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아내가 아들 비위를 맞추며 마치 ‘하인’ 노릇을 하는 것도 안쓰러웠던 터였다. 너무 과한 사교육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하루 종일 애를 위해 희생하는 나도 있는데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 아들을 데리러 가면서 뭐 그렇게 할말이 많냐”고 따지고 들었다. “그럴 거면 아예 애를 데리러 가지 말라”는 핀잔도 이어졌다.
중고등학생을 둔 가정의 40~50대 아버지들은 자녀와 아내 사이에만 서면 들러리가 된다. 어떤 과목, 어떤 학원에 보낼지 결정권은 대개 어머니에게 있다. 주변 아줌마들의 정보를 취합하고 학원을 직접 방문해 상담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생활에 매여있는 아버지들은 관심을 두기가 어려운 분야다.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 교육 성공의 필수조건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아내와 자녀 사이에 성적이나 학원, 휴대전화 사용 등과 관련된 다툼이 벌어질 때다. 학원을 마치고 오후 10시30분~11시에 귀가하는 자녀는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에서 시달린 탓에 놀고 싶어하는 보상심리가 강하다. 이는 “공부를 하든지 일찍 자라”는 엄마와 부딪힐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대기업 차장 B(45)씨도 아내와 자녀 사이의 분쟁에 끼어들었다가 낭패를 겪었다. 아내 편을 들었다가 자녀와 대화가 단절됐었고, 자녀 편을 들었다가 아내와의 사이가 냉랭해진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는 “분쟁 중재를 위해 나름 공정하다는 판단 기준을 갖고 참견을 해보지만, 아내와 자녀 모두 ‘당신은 빠지라’, ‘아빠는 관심도 없으면서’라며 공동의 적이 됐다”며 “같이 살고 있지만 혼자 소외되는 ‘기러기 아빠’나 다름 없다”고 하소연했다.
아버지들은 대부분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에 짓눌리기도 한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중견기업 부장 C(51)씨는 “국어ㆍ수학ㆍ영어는 물론 체육까지 사교육을 받고 있는데 월 150만원 이상 든다”며 “학원에 다닌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남들이 다 하니 따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밤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는 아들과 대화할 시간도 없고, 대화를 하지 않으니 갈등만 쌓인다”며 “아들과 사이가 좋아질 수 없는 생활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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