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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보다 불통ㆍ힘보다 짐… 우리들 가족의 일그러진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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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ㆍ공동체적인 관계에서 도구적ㆍ경제적 관계로 변모
일터ㆍ학원에 묶인 부모와 자녀, 유대감 사라지고 책무의 대상으로
저출산ㆍ초고속 노령화 '암울한 미래', 가족의 와해는 국가 존립의 위기
“우리 아빠는 매일 야근해요. 같이 놀고 싶은데….” 유치원생 이승훈(7ㆍ가명)군.
“엄마는 제게 공부하란 말밖에 할 말이 없나 봐요. 그래서 엄마와 얘기하기 싫어요.” 중학생 유정민(14ㆍ가명)군.
“중학교 2학년 아들은 집에 오면 방에 처박혀 안 나옵니다. 얘기 좀 하려 하면 나가라고 하는데 속이 터지지만 뭘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주부 박성희(45ㆍ가명)씨.
“회사에서 매일 늦게까지 일하다 보니 자식은 자식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저에 대한 불만이 쌓여 소원해졌습니다. 주말에 가끔 외식을 하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 음식만 먹다 돌아옵니다.” 회사원 윤성철(47ㆍ가명)씨.
“전화라도 한번 해주면 기분 좋지요. 내려오라는 말까진 안 해요. 자기들도 바쁠 테니까. 이 나이에 자식들이 잘 사는 거 말고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임순명(72ㆍ가명) 할머니.
이런 말들을 주위에서 자주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현재 이와 비슷한 감정적 동질감을 느끼고 있진 않나요? 한국일보가 창간기획으로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취재과정에서 들은 대표적인 목소리들입니다. ‘뭔가 부족하고, 부자연스럽고, 아쉽고, 내 마음대로 안 되고, 하지만 미안하고 어려운’ 그런 존재가 바로 2015년 현재 우리의 가족입니다.
가족은 사회 구성의 출발이자 핵심입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가족은 인구 재생산, 소비, 교육, 노동력 공급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며 “이런 가족이 무너지니 사회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의 위기는 오래 전부터 예고됐었고, 우리 사회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커다란 위험이 됐습니다. 1970년대 초반 100만명을 웃돌던 신생아의 울음소리는 점점 잦아들어 2000년대 들어서는 40만명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2013년 기준 2,163시간ㆍ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770시간)으로 일터에 묶인 가장들은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마련하기 힘듭니다. 학생들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해, 부모와 공유할 시간적 교집합이 거의 없습니다. 이로 인해 가족의 대화 단절, 소통 부재가 발생했습니다. 청년실업으로 남녀 결혼연령도 점점 높아지고, 심지어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비율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65세 이상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9.6%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높은 청소년 자살율, 각종 범죄,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소비ㆍ구매력 하락 등 사회 문제는 흔들리는 가족의 위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가족의 위기를 문화적, 사회구조적 배경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근대화 이후 우리 가족은 혈연ㆍ공동체적 관계에서 도구적ㆍ경제적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유례 없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가족은 국가가 미처 갖추지 못한 복지체계, 사회안전망의 기능을 떠안게 됐습니다. 누군가와 결혼해 자녀를 양육하고,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책임 때문에 가족 구성원은 서로에게 기댈 곳이면서도 관계를 지탱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얘기입니다. 정서적 유대감보다 서로를 향한 책임과 의무가 더 커지면서, 가족은 힘이 아닌 짐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김혜영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교수(사회복지 전공)는 “가족을 이루고 부담해야 하는 비용까지 떠 안으면서 결혼해야 할 매력적인 요소가 지금의 가족에겐 남아있지 않다”며 “가족이 부담할 비용을 사회가 나누지 않으면 가족은 더 큰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내가 희생하면 우리 가족의 삶은 좋아질 거야’, ‘늙어서 돈 없고 몸 아프면 가족이 책임져 주겠지’ 등의 생각은 이젠 기대할 수 없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부모가 희생하지 않아도 되고, 늙어 은퇴한 뒤에도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동안 가족이 부담했던 비용을 지역사회, 기업, 국가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야 ‘도구적 관계’였던 가족을 ‘정서적인 유대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창간을 선언한 한국일보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실험을 실행합니다. 창간기획을 통해 무너지는 가정에 소통을 통한 정서적인 유대 강화 방안을 제시하고, 기업과 국가에는 가족 존립을 위한 제도 개선을 제안합니다.
지금 우리의 가족은 어떻습니까? 한국일보가 여러분께 던지는 화두입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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