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메르스 수습에는 성숙한 시민의식도 필요하다

입력
2015.06.04 17:54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확산된 1차적 책임은 물론 대응에 실패한 방역 당국에 있다. 메르스의 전염성을 과소평가했고,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질병 확산에 따른 다양한 예측 시나리오를 작성, 선제적 대응에 나서기는커녕 사망자와 3차 감염자가 나온 뒤에서야 부산을 떠는 뒷북 행정으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방역 당국이 갈팡질팡하는 동안 메르스 확진 환자는 35명으로 늘었고, 1,000명이 통제 한계선이라던 격리자는 1,600명을 넘었다. 휴업한 학교도 1,000개에 육박한다. 증상이 없는데도 스스로 외출을 삼가는 자가 격리족마저 생기고 있다.

당국 탓만 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커졌다. 국민 모두가 메르스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성숙한 의식으로 함께 총력대응을 하지 않고는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엊그제는 자택 격리대상인 50대 여성이 당국에 알리지 않고 일행들과 함께 지방에서 골프를 즐기다 현지 보건소직원에 의해 강제 귀가조치 됐다. 이 여성은 “답답해서”라고 변명했지만, 사건 직후 그의 개인정보가 SNS로 확산되면서 결국 이 여성이 거주하는 인근 초등학교 일부가 연쇄 휴업하는 파장을 낳았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방역당국의 지시를 무시하고 홍콩과 중국에 출장 다녀온 일도 있었다. 2003년 사스로 770여명이 목숨을 잃은 중국과 홍콩은 전염병 의심환자를 강제 격리하거나, 이에 응하지 않으면 징역형에 처하는 등 강력 대처한다. 그런데도 이 환자는 홍콩 입국시 메르스 감염환자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같은 비행기를 이용한 여성 2명은 홍콩 당국의 격리조치를 한때 거부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은 한국인의 모랄 해저드 논란과 함께 혐한론으로 확산됐고, 중화권 관광객 한국방문 취소로 이어지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인식이 사태를 더욱 크게 키운다.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행위도 사태 수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감염자나 치료 병원 등 각종 정보를 SNS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 확대재생산하는 일은 자제해야 마땅하다. 이중에는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불확실한 정보가 다수 포함돼있어, 엉뚱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미온대처에 따른 자구(自救) 동기가 원인임은 부인키 어렵다.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틈타 메르스 특수를 노려보겠다는 악덕 상혼은 엄단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제 흥분, 동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사태 해결을 고민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야 한다. 물론 정부가 국민이 요구하는 정보를 정확히 제공함으로써 신뢰를 얻는 일이 전제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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