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차 감염 의미 축소만… 격리자 더 늘면 통제불능 우려

입력
2015.06.02 19:49

바이러스 가라앉히는 음압병상, 서울지역 20개 병상 이미 포화

지역사회 확산 불안 증폭에도 발생 병원 등 비밀주의로 일관

"지정 진료병원 없어 환자 우왕좌왕 정부가 2차, 3차 감염 부추기는 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공용브리핑룸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 관계부처 회의 결과와 대책에 대한 브리핑을 마친 뒤 굳은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공용브리핑룸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 관계부처 회의 결과와 대책에 대한 브리핑을 마친 뒤 굳은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망자가 2명이나 발생하고, 3차 감염자도 2명 확인되면서 메르스의 지역사회 확산 우려도 한층 커졌다. 격리자가 수천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보건 당국은 엉성한 대응으로 일관해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환자 발생 지역과 병원 이름을 공개해 국민들이 스스로 메르스 증상을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기관내 감염이라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며 “병원 공개를 하라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일축했다.

▦ 3차 감염 발생…지역사회 확산 우려

보건당국은 그동안 3차 감염자 발생을 가장 경계했다. 지금까지 메르스 확진자들은 최초 환자 A(68)씨로부터 파생된 2차 감염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1일 메르스 확진 판정자 중 Y(73)ㆍZ(78)씨 2명이 A씨와 같은 병동에 입원했다 메르스에 감염된 P(40)씨에게서 재감염된 3차 감염자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보건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미 메르스가 보건 당국의 추적 범위를 벗어나 지역사회로 퍼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2일 브리핑에서 “일단 보고된 사례가 지역사회 감염이 아닌 병원 내 감염”이라며 ‘3차 감염’이란 표현 자체를 쓰지 않았다.

브리핑에 참석한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은 “지역사회 전파에 대한 우려는 확진 환자의 밀접 접촉자를 추적해 추가 노출 위험을 막고, 50세 이상 기저질환자들을 빨리 격리하면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당국의 통제 밖에 있던 환자가 발생하고, 사망에까지 이르는 등 방역 체계가 허점 투성이여서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의 한 시립병원 의사는 “메르스가 지역사회로 퍼질 경우 공중 보건 방역체계를 다시 짜야 하는 등 사태가 커지기 때문에 병원 내 감염과 지역사회 감염은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면서도 “보건당국이 지역사회 확산 가능성에 전혀 대비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가택 격리자들에 대한 통제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그는 “중국 출장 중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 처럼 생계 위험 등이 있는 상황에서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회사에 알리고 격리조치를 취하라는 건 말이 안된다”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지역사회도 뚫리는 셈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메르스 확진 환자와 접촉한 대상자 전체를 파악해 밀접 접촉자 중 50세 이상 만성질환자만 시설 격리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밀접 접촉자에 대해서는 자가 격리를 통해 매일 두차례 모니터링하겠다는 방침이다.

▦격리자 급증 관리 ‘비상’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단장은 이날 “(3차 감염) 사례와 관련해 격리 대상자를 분류하고 있다”며 “현재 격리자 수보다 수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2일 현재 격리자는 자가 격리자 690여명과 시설격리자 60여명 등 750여명이다. 그러나 한 보건의료 노조 관계자는 “격리자가 사실상 1,000명이 넘어가고 수천명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며 통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이날 메르스 의심환자로 분류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택에 격리 중이던 B씨가 신고 없이 자택을 떠나 보건 당국이 수색에 나섰다. 강남보건소의 요청으로 B씨의 위치 추적에 나선 경찰은 최종 위치가 지방의 한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추적 중이다.

음압병상 등 격리병상의 추가 확보도 관건이다. 음압병상은 공기 압력을 통해 바이러스를 아래로 빨아들이는 시설이 갖춰진 병실로, 기침할 때 바이러스가 밑으로 가라앉도록 설계돼 있어 의료진 감염 확률이 크게 낮아진다.

보건당국은 각종 감염병 치료를 위해 전국 17개 병원에 국가지정 입원치료격리병상(음압병상 105개ㆍ일반병상 474개)를 운영중이다. 그러나 서울 지역 20개 병상은 이미 포화상태이고, 국공립 의료원은 1인실을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 지금이라도 민간 병원의 1인 격리병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 “정부 비밀주의가 화 키워”

‘3차 감염자’가 발생해 지역 사회에서 불특정 감염자가 나올 우려가 커졌음에도 보건 당국은 발생지역과 확진자 진료 의료기관 정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 대신 정부는 의료기관 간 확진자와 의심환자 정보를 공유하는 ‘확진환자 접촉자 조회시스템’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우선 현재 격리대상자 750여명에 대한 정보를 구축(DB화)하고, 일선 의사들이 호흡기 질환자를 진료하면서 보건소에 문의하면 해당 환자의 메르스 발병 의료기관 진료 여부 등을 확인하는 식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이런 방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환규 전 의사협회장은 “메르스가 확산 일로에 있고 메르스 관련 공포가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지정 진료병원을 밝히지 않아 메르스 의심 환자들이 우왕좌왕하며 진단장비나 격리시설을 갖추지 않은 일반 병ㆍ의원을 찾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부가 2차, 3차 감염을 부추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메르스 진단키트를 대학병원에 제공하지 않아 대형 병원에서도 애를 먹고 있다”며 정부 대응 방식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달 31일 메르스 대책 보건의료단체 간담회에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병원(경영자)협회, 제약(산업)협회 대표자 등을 모아놓고 역시 보건 비전문가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회의를 주재하는 등 전시행정만 펼치다 대응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세종=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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