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안 알려주니…" SNS 미확인 정보에 의존

입력
2015.06.0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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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발생병원 명단 등 나돌아

대형병원 장례식장 문상객 '뚝'

보건당국 정보 통제에 불신만

"IMF전에도 경제 안전하다했다"

인터넷엔 정부 비꼬는 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2일 오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감염 예방을 위해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손 소독제를 뿌려 주고 있다. 연합뉴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2일 오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감염 예방을 위해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손 소독제를 뿌려 주고 있다. 연합뉴스

한때 괴담으로 치부됐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공포도 배가되고 있다. 시민들은 보건당국의 정보통제 속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나도는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 명단’ 같은 미확인 정보에 의존하며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했으며 일부는 마스크나 손 세정제 등 예방에 필요한 위생제품 구입에 열을 올렸다.

공포감은 이른 아침 출근길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박모(31)씨는 2일 오전 서울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경기 오산역에서 무궁화호를 탔다. 출근 시간대라 입석까지 빼곡히 들어 차긴 했지만 승객 중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6명이나 됐다. 다음 역인 수원역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더 불어났다. 박씨는 평소 잔기침이 잦았지만 이날만큼은 괜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 기침을 참느라 고역을 치러야 했다. 오전 7시3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삼성역 회사로 출근하던 진모(31)씨는 며칠 전 걸린 감기 때문에 연달아 기침을 했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진씨는 “열도 없고 코감기 진단을 받았던 터라 메르스와는 무관했지만 주변 승객들이 경계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일부 승객은 아예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우려는 더 컸다. 감염 우려 때문에 학교나 어린이집,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가정이 속출했다. 어린이집은 오전에 등원한 아이들의 손부터 씻겼고 교사들에게 자주 손을 씻기도록 지시했다. 강남에 거주하는 유모(38ㆍ여)씨도 2학년 딸 때문에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5일로 예정된 현장 체험학습을 안 갔으면 하는데 아직 학교 측에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보건당국이 서울에도 확진자가 1명 발생했다고 공식 발표하자 며칠 전 떠돌던 소문을 확인 하느라 해당 보건소에 문의전화가 폭주하기도 했다. 서울 A보건소 관계자는 “한 아동병원 원장이 메르스 의심환자 진료 후 감염됐다는 온라인 소문이 맞느냐는 학부모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SNS 단체 대화방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온종일 미확인 정보가 오가며 메르스 확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특히 메르스 전염으로 폐쇄된 병원 정보를 공유하는 글들이 많이 나돌았으나 보건 당국은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궁금증은 더 증폭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혹시 이 병원 아닌가’라는 걱정에 병원 방문을 아예 꺼리는 경우도 줄을 이었다. 회사원 김모(37)씨는 “메르스가 발생한 곳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안 주니 답답하고, 아파도 병원 갈 일을 미루고 있다”며 “정부가 국민들의 공포감을 더 키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형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을 찾는 문상객도 평소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고 병원 관계자들은 전했다.

예정된 모임을 취소하는 등 인파가 몰리는 곳을 꺼리는 현상도 생겨났다. 직장인 황모(37)씨는 이날 고교동창 모임을 잠정 연기했다. 황씨는 “메르스가 전염병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감염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만연한 불안과 공포는 개인 위생제품들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반 마스크는 메르스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미확인 내용이 입소문을 타면서 N95, KF94 등 미세물질 차단 기능이 있는 특수마스크를 찾는 수요가 폭증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박채연(31ㆍ여)씨는 “황사 때문에 하루 2,3명씩 특수마스크를 찾았는데 1일부터 부쩍 찾는 사람이 늘어 재고가 동이 났다”며 “추가 주문을 위해 납품업체에 연락을 하니 품절돼 구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손 세정제나 항균 스프레이를 찾는 사람들도 늘었다. 송파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지영(29)씨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던 손 세정제 판매가 늘어났고, 주변 학원들에서는 항균 스프레이를 많이 사 간다”고 했다.

정부가 메르스 환자 입원 병원을 공개하지 않아 불신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인터넷 동호회 홈페이지에는 ‘메르스 환자가 거쳐간 병원을 방문해도 감염 가능성이 없다’는 보건 당국 발표 내용에 대해 “경제 환란(IMF) 전에도 정부는 한국경제는 안전하다고 했다”고 비꼰 글이 게재됐다. 이 글에는 ‘세월호 침몰 중일 때도 전원 구조됐다고 했지’ ‘6ㆍ25전쟁 때 서울은 안전하고 국군이 이기고 있다면서 다리 끊고…’ 등의 댓글이 달렸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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