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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아는 오빠' 많은 그녀, 속이 터집니다

입력
2015.06.02 11:54

Q 서른 살의 직장인 남자입니다. 작년 말에 소개팅으로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첫날부터 마음에 들었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커플이 되었고 한동안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주말이면 이틀 내내 저희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할 정도로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 때문이었을까요, 24시간을 붙어 있다보니 알게 된 사실 하나는 그녀에게 '아는 오빠'라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겁니다. 토요일 저녁쯤에 술마시러 나오라는 남자부터 일요일에 끊임없이 카톡을 보내는 남자까지... 남자친구는 저인데 너무나 살갑게 연락을 해오는 남자들의 존재가 저로 하여금 이 친구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냥 아는 친구들일 뿐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고 여자친구는 도리어 화를 내네요. 하지만 그녀의 휴대폰을 몰래 보고 싶어지고, 저와 함께 있지 않을때 그녀가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의심하는 것도 꽤 지치는 일이고, 점점 이것 때문에 다투는 일이 늘어나 고민입니다. 우리 커플의 문제,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아는 오빠를 만난 정음을 질투하는 지훈의 모습. 방송화면 캡처
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아는 오빠를 만난 정음을 질투하는 지훈의 모습. 방송화면 캡처

A 희생하는 마음, 배려하는 자세, 이 사람을 위해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의지, 한시라도 보지 못하면 끊임없이 그리워하게 되는 뜨거운 감정까지 모두 연애를 설명하는 요소들이겠죠. 하지만 여기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바로 상대방에 대한 독점욕일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내가 된다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연애라는 관계에 기대하는 전부일지도 모르죠. 이토록 많은 사람 중에 내가 그 사람의 유일한 누군가가 되고, 그 사람의 가장 은밀하고 내밀한 부분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건 그 자체로 황홀한 일일 테니까요. 우리는 누구나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길 바라고, 연애에서의 독점적 관계라는 것이 둘 사이에 건강하게 정착되는 순간 연애를 통해 좋은 안정감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독점이라는 것의 적절한 선이 어디까지인가의 문제일 겁니다. 한쪽은 '사랑하니까 이건 당연히 서로 독점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할 때 다른 한쪽은 '사랑한다고 해서 왜 그런 부분까지 독점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한다면 둘은 아주 많은 경우 의견대립을 보이게 되고 이것은 한쪽에게는 불신을, 다른 한쪽에는 실망과 구속감을 느끼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겠죠. 바로 당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요. 이쯤해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죠. 당신은 자꾸만 연락을 해오는 남자들(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런 남자들을 단호하게 차단하거나 정리하지 않아서 당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당신의 여자친구)이 지금 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사실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닐 거예요. 당신과 당신의 여자친구는 그저 연인간 독점이 가능한 부분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갖고 있을 뿐인 겁니다. 연애 중일 때는 다른 이성과 단둘이 만나는 것은 반칙이라고 생각하는 당신과, 연애 중이라도 다른 이성과의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전혀 반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적절한 독점'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건 너무 자명한 일 아닐까요. 하지만 이렇게 가치관이 애초에 달랐던 문제에 대해, 당신은 의심의 날을 세웠고 그 때마다 여자친구는 분노만 표현했으니 두 사람이 가치관의 차이에 대해 서로 인정하거나 그 폭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은 오히려

사라져 버리고 만 셈입니다. '너와 나는 다르구나'가 아니라 '너는 틀렸어'라고 말하는 순간, 많은 가능성이 증발해 버리는 셈이고요.

인터넷에 '아는 오빠'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중 하나. 이를 접한 남자들의 마음은 복잡미묘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아는 오빠'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중 하나. 이를 접한 남자들의 마음은 복잡미묘해질 수밖에 없다.

'너는 틀렸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다르구나'라는 지점에 다다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니 이쯤에서 상대방이 아닌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라는 그 불안감이, '나는 부족한 점이 많은데 그녀는 나를 버리고 나보다 좋은 남자를 선택할지도 몰라'라는 내면의 열등감이 점점 더 의심을 깊어지게 만들고, 이런 식으로 버림받는 일만은 피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며, 그리하여 할 수 있는 한 모든 상상과 의심을 하게 만들죠.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려고 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역치점은 달라 그런 의심을 좀 더 참아주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떤 관계든 이런 의심과 분노를 주고 받으며 행복하게 지낼 수는 없는 법이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셔야 할 시점입니다. 마음 속의 불안, 열등감, 서운함에 대해서 그녀에게 차분하게 털어놓는 것도 방법이죠. 다짜고짜 '왜 남자들이 이 시간에 연락하는 거야?'라고 화낼 것이 아니라, '이 시간에 연락이 온다는 건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힘든 일인데, 자꾸만 남자들에게서 연락이 오는 걸 보니 불안하고 혹시 네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어.'라고 말해 보는 거죠.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돌아보고 왜 화를 내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면, 그녀도 당신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기보다 당신의 걱정을 이해하고 당신을 안심시키려고 할 겁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의 원인을 무조건 상대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고 그 후에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사람에게조차 화를 내고 비난하는 연인이라면, 글쎄요 그런 사람이라면 어차피 다른 이유로도 헤어지게 되지 않겠어요? 부디, 이 다툼의 결말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용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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