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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국회의 행정입법 견제는 당연"

입력
2015.06.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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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대부분 필요성 주장

정치권, 시행령 탓 법 후퇴 불만

정부는 "경제활성화 방안 등

국회서 막혀 우회로 선택" 반론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행정부와 입법부의 충돌이 격화하면서 ‘입법 독재’와 ‘행정부 견제’라는 프레임 갈등도 표면화하고 있다. 입법부의 기능이 막강해지면서 마치 행정부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로 독재화하고 있다는 지적과 막강한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만든 행정 입법을 두고 벌어진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특히 국회에서 만든 법을 행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후퇴시키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불만을 가져왔다. 2012년 국회를 통과한 ‘관세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경우다. 개정안은 재벌기업의 면세점 독식을 막기 위해 ‘면적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는 관세법 시행령을 발표하며 면적 기준을 ‘매장 개수 기준’으로 바꿨다. 면세점 한 곳을 운영해도 그 크기는 마음껏 키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행정 차질이나 정책 집행의 시급성 등의 이유를 들어 국회의 시행령 개정 요구를 번번이 묵살하기도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2010년 국토교통부가 도심 과밀부담금 감면 대상에 연구소나 금융업소를 포함하도록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을 고치자 과밀을 막자는 법률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시행령을 손도 대지 않았다.

반면 정부는 강해진 국회의 입법권이 삼권 분립의 균형을 깨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주요 대책들이 번번이 국회에 발목이 잡히고 있고, 선심쓰기용 의원 입법이 국회를 통과해 정부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불만이다.

특히 대부분의 경제활성화 방안이 국회에서 막히자 정부는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으로 우회 방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재건축 가능연한 단축, 수도권 그린벨트 전매제한 및 거주의무 기간 완화, 청약제도 개선, 디딤돌 대출의 금리 인하 등의 내용이 담겼던 지난해 9·1 부동산 대책이 하위 시행령 개정 사안으로 채워진 게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는 3권 분립 원칙에서 비롯된 당연한 장치라고 입을 입을 모았다. 이내영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그 동안 (예산안 처리 과정이나 국정감사 등) 청와대와 행정부가 행정부 시행령이나 대통령령 가지고 국회 입법권을 침해한 측면도 없지 않다”며 “국회 요구를 행정부가 반드시 따라야 하고 보고해야 한다는 조항이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일방적으로 국회가 시행령 등 행정 입법을 견제하는 게 원론적으로 잘못됐다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4선의 변호사 출신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청와대, 정부에서 뭘 하겠다고 하면 의원들이 청와대 눈치 보느라 그것에 대해 특별히 토를 달거나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강력한 대통령제 하에서는 더구나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행정입법을 둘러싼 행정부와 입법부의 오래된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모법과 충돌하는 시행령을 생각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번 논란에서처럼 문제되는 시행령을 한꺼번에 일괄적으로 손보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헌논란만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평상시 문제되는 시행령에 대한 감시나 예산 통제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심윤지인턴기자(이화여대 영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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