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이덕일의 천고사설] 조선의 강제 무상급식

입력
2015.04.09 11:35
경남도교육청이 무상급식 중단과 관련한 현안 협의를 명목으로 9일 창원 KBS홀에서 일선 학교 교장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장 워크숍'을 개최하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워크숍에 참석하는 교장들을 상대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도교육청이 무상급식 중단과 관련한 현안 협의를 명목으로 9일 창원 KBS홀에서 일선 학교 교장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장 워크숍'을 개최하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워크숍에 참석하는 교장들을 상대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자가 조선사회를 볼 때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원점(圓點)이었다. 성균관과 4부학당 같은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의 출석과 결석 사항을 점검하는 것이 원점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의 출결 사항을 점검하는 곳이 식당이었다. 밥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때 식당지기나 본인이 점을 찍는데 아침, 저녁 두 끼를 먹어야 한 점을 얻을 수 있었다. 원점 하나를 받아야 하루 동안 거관(居館), 즉 성균관이나 학당에 있었던 것으로 인정했다.

원점을 얻는 것은 아주 중요했는데 원점 300점, 즉 학교에 300일 이상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어야 과거 응시자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밥을 600번 이상 먹어야 과거응시자격을 준 것이었다. 도시락 걱정을 했거나 쌀밥인가 잡곡밥인가, 또는 반찬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급우들과 비교되는 것을 걱정했던 세대로서는 나라에서 강제로 학생들에게 밥을 먹였던 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 중기 문신 중에 만 여든세 살까지 살았던 심수경(沈守慶ㆍ1516~1599)이 쓴 ‘견한잡록(遣閑雜錄)’이란 책이 있다. 그는 만년에 우의정을 그만두고 나라에서 원로들을 우대하기 위해 만든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는데 ‘견한(遣閑)’이란 한가함을 보낸다는 뜻이니 아마도 이때 쓴 것으로 추측한다. 자신이 몸소 겪은 바를 적은 ‘견한잡록’에 원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문과 식년초시(式年初試)에서 성균관에서 생활한지 300일이 넘는 자 중에서 50명을 뽑는 것은 성균관에서 지내도록 권유하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성균관에서 지내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나라에서는 원점부시법(圓點赴試法)을 만들었다. 원점이 찬 자만 과거에 나갈 수 있게 법으로 규정한 것인데, 원점이 300점 이상인 자는 성균관에서 행하는 관시(館試) 응시자격을 주고, 150점 이상인 자는 서울에서 행하는 한성시(漢城試)나 지방에서 행하는 향시(鄕試)에 응시 자격을 주는 법이었다.

조선 태종 17년(1417) 윤5월 만든 과거 시험 규정에 따르면 분수(分數), 즉 과거시험 점수가 같을 경우는 원점이 많은 자를 뽑을 정도로 이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심수경은 “성균관에서 지낸다는 것은 밤낮으로 공자를 모시고 독서를 부지런히 하라는 것인데 지금은 단지 과거에만 응시하기 위해서 성균관에서 지내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라고 한탄하고 있다.

그런데 원점 제도가 강화된 이유에 대해 ‘태종실록’은 서울의 부유하고 권력 있는 집안(豪勢)의 자제들 때문이라고 썼다. 성균관에서 제공하는 음식과 숙소가 집에서 먹는 음식과 거처보다 못하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이다. ‘태종실록’은 간혹 학문에 뜻을 둔 자는 모두 향곡(鄕曲ㆍ시골)에 사는 한미한 사람인데, 이들은 항상 성균관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간혹 풍습병(風濕病)을 앓으니 사람들이 이를 싫어해서 성균관에서 지내는 거관자(居館者)는 늘 30~40명 미만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태종은 학생들이 지내는 숙소(齋) 한 모퉁이에 온돌방을 지어서 병자가 휴양하게 하고, 또 의원들에게 병이 난 학생들을 진찰하고 치료하게 했다. ‘태종실록’은 이로써 “선비를 기르는 방법이 구비되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식량 제공 비용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만든 국가기관이 양현고(養賢庫)다. 고려 예종 14년(1119) 국자감(國子監)을 국학(國學)으로 고치면서 국학 안에 설치해 학생들에게 식량과 재정적 뒷받침을 하게 했다. 조선에서는 성균관에 딸린 2,000여 결(結)의 섬학전(贍學田)을 양현고에 소속시켜 학생 200명의 식량 조달을 책임 지웠다. 양현고를 만들어 재정을 마련하고 학생들에게 강제로 밥을 먹게 한 것은 식사 자체를 교육의 중요한 일환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동량들에게 학문뿐만 아니라 밥 먹는 것도 가르친 것으로서 모두 ‘선비를 기르는(養士) 방법’이었다. 그래서 과거급제에 시험 점수뿐만 아니라 밥 먹은 횟수도 따진 것이다.

경남도에서 강행한 무상급식 폐지 때문에 논란이 많다. 무상급식을 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 포장해 장삼이사(張三李四)를 편 가르기 하는 현상이 우려된다. 무상급식은 미래 사회의 주역들에게 기성세대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부담이자 예의일 뿐이다. 오히려 밥 먹은 횟수를 점수화했던 선인들의 교육철학을 배워야 한다. 가난한 학생들을 돕고 싶은 것이 본심이라면 양현고 같은 것을 만들고 부자들의 기부를 독려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