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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증액심사 땐 밀실 회의…쪽지예산 3년간 1조원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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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공식모임선 "없애야 할 구악"
지역구선 "내가 숙원사업 해결" 생색
"공개 회의 통해 투명성 높이고
상임위ㆍ예결위 단계별 검증 강화를"
“청도천 생태하천 조성을 위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국비 27억원을 증액 확보하였습니다. 관하천 하천재해예방사업에 국비 39억원을 증액 확보하였습니다”(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013년 새누리당 의원 시절 올린 의정보고서 일부)
“안희정 충남지사가 과거 도청 청사 건립을 위해 쪽지 예산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200억원을 확보해 오늘날의 반듯한 충남도청이 건립됐습니다”(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올해 1월 당대표 경선 당시)
쪽지예산을 치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여야가 따로 없다. 국회의원들끼리 공식적으로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권에서 없어져야 할 구악”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지만, 저마다 흩어져 지역구로 가면 “내가 지역의 숙원 사업을 해결했소” 하며 생색내는 게 보통이다.
15일 국회예산안(2012~2014년)을 집중 분석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스 교수팀에 따르면 3년간의 쪽지예산은 총 415건, 1조2,067억원에 달했다. 구체적으로는 2012년 5,190억원(149건), 2013년 5,511억원(165건), 2014년 1,366억원(101건)이 각각 편성됐다. 명확한 근거가 없어 분석되지 못한 것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쪽지예산이 편성되고 누가 그런 부탁을 하는지 실체를 알기 위해선 예산 심의 과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예산안 처리는 크게 ①정부 예산안 국회 제출 ②국회 각 부처별 상임위원회 심의(예산 삭감만 가능) ③예산결산특별위원회 및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 심의(삭감과 증액 모두 가능) ④본회의 통과 등 4단계를 거친다.
좁은 의미의 쪽지예산은 주로 3단계에서 벌어지는 ‘작업’의 산물이다. 특히 예결위 내 예산안조정소위는 각 상임위에서 올라온 예산안의 중요도를 판단해 관련 항목의 예산을 깎거나 늘리는 막중한 역할을 한다. 해마다 370조원이 넘는 사업예산을 주무르는 데다 심사 과정에서 민원성 쪽지를 반영한 예산을 편성ㆍ증액할 수 있는 막강 조직이다 보니 로비가 끊이질 않는다. 학연 지연 등 인맥을 동원해 해당 위원들한테 비밀리에 접촉해 기존에 없던 예산안을 따내거나 예산을 늘리는 식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쪽지예산은 정치를 오래한 터줏대감 의원, 권력층과 가까운 실세들 중심으로 쓰이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로비는 위원회 바깥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예산안조정소위의 구성원을 보면 이 자체로도 하나의 로비조직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여야 합쳐 15명(새누리당 8명, 새정치민주연합 7명)으로 구성되는데 전문성보다는 지역 안배를 우선 고려하는 게 관례처럼 됐다.
올해 예산안을 심의한 구성원만 보더라도 새누리당은 수도권 의원 2명(이학재, 이현재), 대구ㆍ경북 2명(김희국, 이한성), 부산ㆍ경남 2명(김도읍, 윤영석), 충남 1명(홍문표), 전남 1명(이정현)으로 구성됐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수도권 3명(김현미, 민병두, 송호창), 충남 1명(박완주), 전남 1명(황주홍) 전북 1명(이춘석), 비례 1명(홍의락) 등으로 꾸려졌다. 지역별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여야 상관없이 증액 합의를 이룰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예산안 삭감 논의를 할 때는 회의를 공개하면서도 ‘쪽지예산’이 실제적으로 이뤄지는 증액심사 때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비공개 진행을 하겠다”며 늘 밀실회의를 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쪽지예산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쪽지예산이 곧 정치인의 생명을 좌우할 표심과 직결되는 만큼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근절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작년 11월 올해 예산안 심의 당시 홍문표 예결위원장이 “원칙적으로 상임위에서 올라오지 않은 예산은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제대로 지켜졌을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정창수 경희대 교수는 “심의 과정에서 증액 등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정부안에 끼워 넣고 심의 과정에서 액수를 증액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편법 쪽지예산이 횡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증액 심사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창수 교수는 “공개 회의를 통해 어떻게 누구에게 편성되는지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2~2014년 쪽지예산으로 분류된 게 연 평균 183건인데 증액을 요구한 의원의 실명을 알 수 있는 건 매년 20여건에 불과했다. 단계별 검증도 강화돼야 한다. 신원기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는 “관행상 상임위에서 걸러낸 예산안은 예결위에서 안 거르는데, 상임위는 예결위에서 심사할거라 믿고 안건을 그대로 올리기 일쑤”라며 “각 단계별로 철저히 검증을 하고, 예결위 위원들도 실세가 아닌 전문성 있는 사람들로 채워져야 한다”고 밝혔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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