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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오일뱅크 '흑자' 발언에 발칵 뒤집힌 정유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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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유업계에 최근 비상이 걸렸습니다.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지난달 말 열린 에너지 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흑자를 낼 것 같다. 10분기 연속 흑자”라는 발언 때문입니다. 전세계 정유업계 모두가 저유가 충격에 사상 최악 경영 성적표를 받을 것이 확실한데, 나 홀로 흑자가 예상된다고 발표했으니 경제 업체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유가가 비쌌을 때 수입해 보관해 둔 재고 원유를 싸게 팔게 팔 수밖에 없어 손실을 피하기 힘든데, 현대오일뱅크가 흑자가 날 것이라고 발표하는 바람에 회사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재고, 회계, 재무 담당들에게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다시 점검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심각한 재정 적자에 주주 배당을 하지 않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에쓰오일(S-OIL)은 정제 사업을 시작한 이후 34년 만에 처음 적자를 냈습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200% 수준으로 받았던 성과급을 올해는 못 받을 상황입니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흑자를 자신할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그 동안 꾸준히 원가 절감 노력을 기울여 온 결과”일 뿐이며 “타사에 비해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재고 관리 측면에서 좀 더 발 빠른 대처를 해 재고 물량을 줄였던 것이 주효 했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3년부터 원가절감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남미 아프리카 원유 도입 등 유종 다변화를 통해 원가 비용을 줄여왔습니다. 또 경쟁사보다 높은 고도화 비율도 흑자를 올린 비결이라고 합니다. 고도화란 상대적으로 저가인 중질유를 정제해 고부가가치 경질유로 전환하는 설비 입니다. 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 비율은 36.7%여 고유가 시절 상대적으로 저가에 원유를 수입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정유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의 SK에너지 고도화 비율은 17.2%에 불과하고, GS칼텍스 34.6%, 에쓰오일(S-OIL) 22.1% 로 현대오일뱅크에 뒤집니다. 또 규모가 작은 만큼 적정 재고도 작아 유가하락에 따른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오일뱅크는 하루 평균 정제 가능량은 39만배럴에 그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약 111만5,000배럴,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각각 77만5,000배럴과 66만9,000배럴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도 이 대해서 대체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현대오일뱅크가 이 와중에 어떻게 흑자를 낼 수 있는지는 미스터리라는 이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기업공개(IPO)를 추진 해 온 현대오일뱅크가 ‘몸값’을 높이기 위해 흑자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사상 최악의 상태인 모 기업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의 상장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말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오일뱅크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아직까지 싸늘하기 때문에 지금 IPO에 나서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업계 유일의 흑자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는데도 현대오일뱅크가 이를 대놓고 자랑하거나 떠들썩하게 알리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 기업 현대중공업의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중공업이 어려움에 빠진 것은 물론 현대중공업이 수주나 영업을 잘 못하고 있는 탓이 크지만 2010년 현대중공업이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로부터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할 당시 지불했던 주당 1만5,000원에 차입 인수 금융 비용도 어느 정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얘기입니다. 심지어 현대오일뱅크는 관계자들은 문 사장의 발언이 알려지고 나서 흑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좋은 일임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업계 전체가 힘들어 하고 있고, 모 기업도 힘든데 우리 혼자 잘 했다고 해서 누가 기뻐 하겠느냐"고 하소연했습니다.
흑자를 못 낸 회사나 흑자를 낸 회사나 이래저래 정유업계는 힘든 시즌을 겪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봄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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