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MB 남북접촉·외교비사 공개 경솔하고 무책임

입력
2015.01.30 17:25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재임 중 남북 비밀접촉 및 외국 정상들과 나눈 대화를 공개한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퇴임 2년도 안된 전직 대통령이 국가적 이익은 안중에도 없이 재임 시의 공을 과시하거나 자기변명 차원에서 민감한 비사를 까발렸다. 경솔하고 무책임한 전직 대통령의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재임 중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남북간에 은밀하게 이뤄진 접촉 비화 공개다. 자서전에는 2009년 8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으로 서울에 온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의 언급을 포함해 5차례 이상의 남북 물밑 접촉 내용이 담겨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비밀접촉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런 비밀접촉에서 오고 간 내용을 적나라하게 공개해버리면 양측간에 최소한의 신뢰조차 무너지게 된다. 앞으로 북한 정권을 상대로 갖가지 형태의 접촉을 통해 난제를 풀어가야 하는 현 정부에는 큰 부담이다. 후임 정부의 일은 내 알 바 아니다는 심보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비밀접촉 과정의 전후 맥락을 생략하고 일방적인 얘기만 공개하는 것은 진실을 왜곡하기 십상이다. 회고록은 2011년 5월 베이징 남북비밀접촉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사과 수준과 표현 문제가 논의됐으며 북한이라는 주체가 분명하게 드러날 만한 문구를 요구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측은 2011년 6월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이 비밀접촉의 남측 참석자들의 실명을 공개하고 이들이 남북정상회담을 애걸하며 돈봉투까지 건네려 했다고 전혀 다른 주장을 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비밀접촉을 일방적으로 까발린 행태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전 대통령이 북측의 무책임한 행태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회고록에는 이 전 대통령이 2012년 1월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와의 회담 중 북한 김정은에 대해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 2010년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FTA 난항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불만 등도 소개돼 있다. 정상 간에 은밀하게 나눈 민감한 대화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거나 외교적 파장을 낳을 수도 있는 문제다.

퇴임 대통령은 재임 시 국정수행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외교안보 관련 내용에 대해 일정기간 비밀을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공개한 남북 관련 사항들이 이런 법적 의무를 어기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 전 대통령 측 한 인사는 전임 정부에서 이뤄진 외교안보 관련 사항을 현 정부에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어서라고 강변했다. 이 전 대통령은 민감한 외교안보관련 사항 공개로 초래된 심각한 논란과 후유증에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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