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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취임직전 盧전대통령과 쇠고기협상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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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사태 "국민과의 소통 중요성 체감 계기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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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전 대통령은 29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광우병 사태, 세종시 수정안 추진, 삼호주얼리호 승무원 구출 작전(일명 아덴만 여명 작전) 등 재임시 각종 현안에 대한 비사를 비교적 소상히 소개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초반 국정과제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됐던 광우병 사태와 관련, 자신의 취임 직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나 쇠고기 협상 문제를 논의했으며,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미국과 쇠고기 수입에 합의했음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막바지에 쇠고기 수입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됐을 때 당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현 새누리당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전화통화로 월령 제한 없이 쇠고기를 모두 수입하겠다는 이면 합의를 했다"고 보고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이 전 대통령이 이처럼 노 전 대통령과의 쇠고기 수입 협의 사실과 노 전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 사이에 이뤄진 월령 제한 없는 쇠고기 수입 합의를 공개한 것은 광우병 파동 당시 이를 주도하며 '이면합의' 의혹을 제기했던 야당이 실제로는 이면 합의의 당사자라는 주장을 에둘러 드러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회고록의 중요 내용 발췌.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괴담 = 대통령 취임을 일주일 앞둔 2008년 2월 18일, 청와대 관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마주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부시 대통령과 수차례 약속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은 임기 중 처리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노 대통령은 미국과 약속했다는 점은 시인하면서도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다고 미국 의회가 FTA(자유무역협정)를 처리해준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결국 나는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하여 큰 딜레마를 안고 대통령에 취임해야 했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재협상을 요구했다. 2008년 6월 7일, 나는 쇠고기 협상과 관련하여 부시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미국 정부가 30개월령 미만의 쇠고기 수출에 대해 우리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0개월령 이하의 소만 한국으로 수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점을 이 대통령께 보장하겠습니다.”
부시는 내 제안을 수락했다. 부시와의 통화를 마친 후 추가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쇠고기 사태는 한·미 관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국민과 소통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계기도 됐다.
<중략>
오바마의 방한을 이틀 앞둔 2010년 11월 8일부터 서울에서는 한·미 FTA 통상장관회의가 열렸다. 여전히 자동차와 쇠고기가 협상의 쟁점이었다. 나는 9일 저녁 7시 30분 무렵 청와대 소회의실로 한·미 FTA 관계자들을 불렀다.
쇠고기 협상은 비관세장벽에 관한 문제로 관세 문제를 논의하는 FTA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 협상 팀은 쇠고기를 FTA와 연계시키고 있었다. 나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미국은 보커스 의원을 설득할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우리 측의 쇠고기 수입 조건 규제 완화 약속을 구체적으로 받아내겠다는 것입니까? 보커스의 요구는 뭡니까?"
김 본부장이 대답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와 통화하면서 이면 합의를 했습니다. 그걸로 담화 발표까지 했습니다. 2007년 9월 APEC을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또 한 번 구두로 합의했습니다. 그 내용과 문서가 유출됐답니다. 특정위험부위(SRM)를 제외하고는 월령 제한 없이 전부 수입하겠다는 내용이라 합니다. 보커스는 한국 정부가 그 합의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입니다."
◇세종시 수정안 = 언론이 일제히 '정운찬 (총리후보자), 세종시 수정안 추진'이라고 보도한 뒤 여당 일각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한나라당 비주류'의 반응은 싸늘했다.
전혀 근거 없는 추론이었지만,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
돌이켜보면 당시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운찬 총리 지명과 함께 세종시 문제가 논란을 빚던 2009년 9월16일 오전 나는 박근혜 전 대표와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만났다.
박 전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을 강조하며 세종시 문제가 충청도민과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는 그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내 생각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내가 박근혜 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전작권 연기·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오바마 "이 대통령 원하는 대로" = 2010년 4월 13일,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미국은 내 자리를 오바마의 옆에 배치했다. 회의 시작 직전에 나는 옆자리의 오바마에게 말했다.
"전작권 전환 연기 문제를 검토했으면 합니다. 2012년 일정은 한·미 양국 서로에 무리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핵 개발과 천안함 사태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오바마가 말했다. "우리 안보팀이 한국과 논의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저도 이 대통령 말씀에 공감합니다. '2+2 채널'을 통해 검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바마는 당시 전작권 전환 연기에 동의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미 국방부 장관은 전작권 전환 연기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내가 취임한 후 첫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상희 장관과 2010년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 역시 전작권 전환 연기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다.
6월 26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제4차 G20 정상회의 기간에 나는 오바마와 정상회담을 하고 전작권 전환 일정을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미사일 체계가 필요했다.
2012년 들어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됐다. 5월 16일 재차 비공개 협의를 위해 미국에 다녀온 김태효 기획관이 보고했다.
"미 국무부의 반대가 워낙 심합니다."
나중에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오바마가 백악관 참모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이냐고 몇 번씩 물었다고 한다.
결국, 논의가 시작된 지 2년 만인 2012년 10월 초 최종 합의가 도출됐다. 목표한 대로 탄도미사일 사거리 800킬로미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천영우 수석과 통화하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이 대통령 간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 말했다고 한다. 오바마는 결국 "이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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