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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패율제 없는 권역별 비례대표, 비례성 제고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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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를 개혁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다양한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하는 것과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요구가 큰 것은 전자에 대한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가장 치열했던 1990년대 중반 당시 최대 쟁점은 1947년부터 이어져온 중선거구제 유지 여부였다. 한 선거구에서 최대 4명까지 선출하고 유권자 1인당 1표를 행사했던 중선거구제 하에서는 4위 내에만 진입하면 중의원 당선이 가능했기 때문에 각 정당은 파벌 중심으로 운영되고 후보들은 일부 유권자군과 접촉해 표와 정책을 거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검은 동맹’을 바탕으로 이른바 ‘55년 체제’로 불린 자민당 일당우위체제가 장기간 지속됐다.
금권선거와 정치부패의 악순환이 이어지자 일본 정치권은 전격적으로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사표에 따른 득표율과 의석률 간의 심각한 불균형이 뚜렷해졌고, 이에 따라 최근에는 비례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중선거구제로의 회귀나 비례대표제 도입 요구가 커지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우리보다 높은 일본에서 의석불균형 논란이 발생한 이유의 하나는 석패율제도, 정확히 표현하면 중복입후보제도다.
일본은 1994년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로의 전환과 함께 중복입후보제를 도입했다. 전국을 11개 권역으로 구분해 비례대표를 선출했는데, 각 권역별로 소선거구와 비례대표 양쪽 모두에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각 정당은 비례대표 명부의 순위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데, 한 순위에 중복입후보한 여러 후보의 우열을 가르는 기준이 바로 석패율이다.
석패율은 소선거구 당선자의 득표수를 기준으로 해당 비례대표 후보가 어느 정도 득표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중복 출마했을 경우 소선거구 당선자는 100%가 되고, 이보다 낮은 나머지 후보들 중에선 득표율이 높은 후보가 비례대표의원으로 당선되는 것이다.
중복입후보제 활용 여부는 정당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데, 자민당이나 민주당 등 거대 정당은 대부분의 후보를 중복입후보시킨다. 가령 권역 내 대부분의 소선거구 후보들을 모두 비례대표 명부 1순위에 올리는 것이다. 개별 후보 입장에서는 당선 기회가 두 번 생기는 것이고, 정당 입장에선 모든 선거구에서 정당득표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선거구 후보들은 다른 선거구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자신의 당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선거구 내에서만 열심히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복입후보제에서는 다른 선거구에서도 자당 후보가 당선돼야 자신에게 유리하다. 만일 자신이 소선거구에서 낙선하더라도 다른 중복입후보자들이 소선거구에서 가능한 많이 당선돼야 자신도 비례대표로 당선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중복입후보제는 소선거구에 많은 후보를 낼 수 있는 거대 정당에게 유리한 제도인 셈이다.
소선거구제도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비례대표제도는 상대적으로 비례성을 잘 구현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이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적절한 수준에서 이 두 가지 기능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를 위해선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독립적으로 병립하면서 기능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중복입후보제를 허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비례성의 기능을 약화시켰다.
현재 국내에서도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석패율제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데,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석패율제로 불리는 중복입후보제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비례성 부족을 해결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소정당 유력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매우 낮다.
또 비례대표 의석 수를 늘린다면 모를까 현행 54석을 유지한 상태에서 인구비례에 따라 영남권ㆍ호남권 등으로 권역을 구분해 선출한다면 이 역시도 이들 권역(지역)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에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중복입후보제를 허용하지 않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방법이, 특히 가능하다면 비례대표 의석 수를 늘려 실시하는 방법이 비례성 제고와 지역주의 폐해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 최근 비례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별도의 비례대표제 도입 요구가 커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석패율제도는 비례대표 명부 상의 동순위 배열이 전제조건인데, 이는 여성ㆍ장애인 등 정치적 약자를 배려하는 할당제와 충돌하면서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비례성 증진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경우 일본처럼 1인당 1표를 행사하는 방식보다는 선거구별로 해당 의석 수만큼의 표를 행사토록 하는 방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경우 복잡한 선거제도로 유권자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
경제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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