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트라우마 탓 권력분산 최우선… 극단적 다당제로 흘러

입력
2015.01.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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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독점 막으려 개방형 비례대표, 양당제 우려 대선거구제 운용

정책 집행·입법 등 어려움 불구 정치권은 여전히 "민주주의 부합"

브라질 선거제도는 지난 1988년 기틀을 마련했다. 민주화 운동의 결실로 1964년 움베르토 카스텔로 브랑코 장군의 쿠데타로 시작된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을 만들면서다. 반복된 독재 역사의 트라우마 때문에 권력분산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나머지 극단적 다당제라는 또다른 복병을 만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복된 독재의 역사로 권력 분산에 주안

27개 주로 이뤄진 연방제 국가인 브라질은 상ㆍ하원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양당제로 흐를 것을 우려해 주(州)를 하나의 선거구로 묶은 대선거구제를 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이 제시한 개방형명부에 따라 비례대표만 선출토록 하는 제도 또한 권력의 쏠림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유권자는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1표를 해당 선거구에 출마한 정당 후보자나 정당 중 하나를 골라 투표하게 된다. 의석은 소속 후보자의 개인 득표를 포함한 정당의 총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고, 당선자는 정당 내 득표 순위에 따라 결정된다. 정당이 공천권을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정치제도 또한 권력 독점을 막고 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 발전해 왔다. 16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갈 식민지배, 1822년 독립 후 지속된 왕정통치와 1899년 공화정으로 전환 이후 권위주의 독재에 이은 군부 독재를 거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다수를 차지하는 혼혈인과 유럽계 백인, 아프리카계 흑인, 브라질 원주민, 동양계 이주민 등이 섞여있는 문화ㆍ인종적 배경도 작용했다.

하지만 결과는 원내정당만 20여개에 달하는 극단적 다당제로 나타났다. 페르난도 마젤란 리몬기 상파울루주립대(USP) 인문사회대 학장은 “선거제도가 복잡하고 정당 숫자가 많아 집권 세력의 힘만으로는 정책 집행과 입법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대선거구제를 통해 특정 세력의 권력 독점을 막고 비례대표제로 소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보다 민주주의 원칙에 더 부합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표의 등가성 문제에 관대… 지역ㆍ계층간 격차 해소에 도움 판단

브라질 선거제도의 특징 중 하나는 표의 등가성 문제나 지역별 대표성 격차에 상당히 관대하다는 점이다. 연방하원의원 1명당 유권자 수의 경우 브라질 최대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는 최북단 호라이마주는 2만9,200명인데 반해 상파울루주는 40만539명으로 13.7배나 많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주 별로 인구나 경제력에서 극심한 격차가 나는 만큼 선거ㆍ정치제도를 통해 지역간ㆍ계층간 불균형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더 크다. 다아스 토폴리 브라질 선거대법원장은 “다른 남미 국가들은 식민지 지배에서 독립한 이후 여러 개의 국가로 분열됐지만 브라질은 하나의 국가로 남을 수 있었다”며 “지역별 특성이 강한 주들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민주적으로 조정해가며 연방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현행 선거제도 장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다른 특징은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원칙적으로 모든 정당에게 방송광고의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그만큼 신생ㆍ소수정당에 유리한 제도다. 유권자가 투표 의무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고, 관공서에서 민원업무를 볼 수 없도록 강력하게 규제하는 제도도 눈에 띈다. 선거 사무를 총괄하는 조직을 사법부에 둬 정치권 입김을 배제한 것은 상당히 유의미하다.

한 브라질 시민이 지난해 10월 대통령선거 결선투표를 앞두고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거리에서 흩뿌려진 선거유인물을 밟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 브라질 시민이 지난해 10월 대통령선거 결선투표를 앞두고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거리에서 흩뿌려진 선거유인물을 밟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브라질리아ㆍ상파울루=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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