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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 따라 정당 난립… '정치 무관심→부패→혐오' 악순환

입력
2015.01.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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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하원 진출 정당 무려 28개… 대선거구제로 1,2% 득표 당선

50만명 서명만으로 창당 가능… 광범위한 연정 뒤엔 장관직 나눠 먹기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항의하는 브라질 시민들이 16일(현지시간) 상파울루 시내에서 거리행진을 하다 경찰 저지선에 가로막히자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상파울루=로이터·연합뉴스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항의하는 브라질 시민들이 16일(현지시간) 상파울루 시내에서 거리행진을 하다 경찰 저지선에 가로막히자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상파울루=로이터·연합뉴스

지난 연말 찾은 브라질의 경제수도 상푸울루는 연말연시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상파울루의 중심가 파울리스타 거리에는 곳곳에 시위대가 썰렁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10월 대통령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도 선거 직후 터진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 ‘뇌물ㆍ부패’ 사건 연루 의혹으로 심기가 편치는 않다고 했다.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만난 은행원 마르셀로 피시뽀(45)씨는 “브라질은 부유한 나라인데 정치부패가 끊이지 않으면서 기회를 잃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난립한 정당에 정치혐오도 커져

지난해 10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연방ㆍ주정부 동시선거 결과 연방하원에는 28개 정당이 진출했다. 지난 선거 당시 22개 정당보다 6개 늘었다. 극단적 다당제에 대한 여론도 점차 악화하는 현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 회사원 클라브디아 디비엔(38)씨는 “정당이 너무 많아 솔직히 2, 3개 정당을 제외하면 어떤 주장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며 “지금도 후보가 누구인지 좌파인지 우파인지조차도 구분이 안 되는데 갈수록 정당 숫자만 늘고 있다”고 푸념했다. 화가 바그너 자니라토(50)씨는 “가급적 후보의 도덕성을 기준으로 투표를 하려고 하지만, 후보자가 너무 많아 당선자가 나와도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극단적 다당제와 잇따른 정치 부패가 무관하지 않다며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특히 대선 직후 터진 페트로브라스 스캔들로 정치혐오로까지 확산되고 있었다. 브라질리아에서 만난 회계사무소 직원 제레미노 베네디토 아우베스(57)씨는 “초선 의원은 직장생활을 해서 평생 벌 수 있는 돈의 절반을 벌고, 재선을 하면 평생 벌 돈을 모은다고들 한다”며 “의원직이 손쉬운 돈벌이 수단처럼 여겨진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대선거구ㆍ개방형비례제로 정당 폭증

원내정당의 폭증은 복잡한 선거제도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브라질은 대선거구제를 통해 완전개방형비례대표 방식으로 당선자를 가린다. 유권자는 정당 소속 후보자나 정당에 자유롭게 딱 1표만 행사한다. 주 단위가 하나의 선거구인 대선거구제로 인해 한 선거구에서 많게는 70명의 연방의원을 배출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후보 검증은 뒷전이다. 건설현장 경비원 페르난도 알론소(29)씨는 “개그맨 ‘치리리카’는 인종 비하 논란을 산 노래를 불러 인지도를 높여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는데, 이번에도 이렇다 할 공약도 내놓지 않고 100만표 넘게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고 혀를 찼다.

대선거구제로 인해 유효투표수의 1, 2%정도만 얻고도 당선되는 경우도 나온다. 특히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어 자신의 득표율이 낮더라도 소속 정당의 득표율이 높으면 당선권에 들 수 있다. 일례로 권역이 가장 큰 상파울루주의 경우 브라질공화당(PRB) 소속 켈로 루소마노 의원이 152만4,361표를 확보해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됐는데, 같은 당 파우스토 피나토 의원은 켈로 의원의 득표력 덕에 2만2,097표로 배지를 달았다. 득표수 차이가 무려 69배에 달한다. 이들이 속한 당은 원내 제10당으로 전체 21명 의원 중 8명이 상파울루주에서 당선됐다.

정당 창당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도 정당 폭주를 부르는 요인이다. 브라질은 등록된 유권자 1억4,282만2,046명의 0.35%인 50만명의 서명을 받으면 창당할 수 있다. 알렉산더 라츠르 우에하라 리오브랑코대 정치학과 교수는 “현행 제도하에서는 득표율이 높을 수록 유력 정당보다는 소수정당에 있거나 스스로 창당을 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득표력 강한 정치인이 정당을 사고 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장관직 나눠먹기로 변질된 대연정

브라질에서는 광범위한 연정이 지속되고 있다. 원내 제1당인 집권 노동자당(PT)조차 연방하원에서 차지한 의석이 70석으로 의석 점유율이 전체(513석)의 13.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우마 대통령은 올해 1월 집권 2기 내각을 꾸리면서 정부 장관직 39개 중 15개를 연정 파트너에게 나눠줬다. 몇몇 학자들은 특정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 만큼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상파울루 주립대에서 노인학을 전공하는 빅토리아 우카트(20)씨도 “브라질은 많은 인종과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고 지역ㆍ계층간 격차도 상당히 크다”며 “소수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많을수록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브라질의 정치 현실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치불신으로 국민들이 정치를 외면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연방의원들조차 이권을 따내기에 혈안이 돼 있을 뿐 입법활동에는 소극적이다. 일례로 지난 한 해 동안 연방하원의원 500여명 중 단 26명만이 의원입법에 나섰을 뿐이다. 시민단체 ‘브라질투명성’의 클라우지우 웨버 국장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브라질 국회는 수 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변질됐다”며 “집권당은 연방정부 부처의 관직을 배분해 이익을 보장해주고 그 대가로 지지를 사고 있다”고 비판했다.

브라질리아ㆍ상파울루=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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