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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국민 노릇 하기 힘든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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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걱정 대상 된 대통령과 청와대
연말정산, 담뱃세 폭탄에 민심 분노
문고리 권력 도려내지 않으면 후회
고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한지 얼마 안돼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을 해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이 반대 여론에 부딪친 데 대한 서운함을 표현한 것이기는 하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투정에 대다수 국민은 “국민 노릇도 힘들어 못해 먹겠다”고 쏘아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이후 이 말이 다시 등장했다. 국민은 제자리에서 묵묵히 ‘국민 노릇’을 하고 있는데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푸념과 원망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골칫덩이는 청와대다. 측근 실세들의 국정 농단과 이들에 대한 대통령의 맹목적인 편애는 국민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한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사심은 없을지 모르나 내부 단속도 못하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고 수석비서관은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며 뛰쳐나갔다. 그 아래 비서관은 문건을 빼돌려 대통령의 동생에게 갖다 바쳤고, 새파란 행정관은 배경을 믿고 집권당 대표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일반 기업에서 전무가 사장 말에 거역하고 상무는 대외비 자료를 빼돌리고 부장은 계열사 사장을 음해하는 행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 콩가루 회사의 미래는 보나마나다. 하물며 그런 일이 권력의 심장이라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고 아무 문제 없다”며 감싸기에 급급하다. 국민들은 사슴을 사슴이라 하는데 혼자 말이라고 우기는 격이다. 그런 기막힌 광경을 보는 국민들이 ‘국민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을 턱이 없다.
박 대통령은 인적쇄신 대신 경제살리기 깃발을 들었다. “쓸데 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나를 따르라”며 다그쳤다. 여론을 외면한 일방통행 식의 리더십이 얼마나 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지만 박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살리기가 누굴 위한 것인지도 아리송하다. ‘13월의 월급’이라는 연말정산이 졸지에 세금폭탄으로 바뀌면서 중산층 민심이 폭발하고 있다. 실제 정산을 해보니 정부 주장과 달리 세부담이 과한 경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액의 담뱃세 인상으로 서민들의 가슴을 시커멓게 태워놓더니 그것도 모자라 부스러기 돈까지 긁어가겠다는 심산이다. 대기업 세금을 올릴 생각은 않고 월급쟁이와 영세자영업자 주머니를 털어 부족한 세수를 채워 넣으려는 꼼수를 모를 국민은 없다.
규제를 마구잡이로 풀어 불량아파트를 대량으로 지은 것이 의정부 화재 참사의 원인으로 밝혀진 다음날에도 여전히 “규제풀기가 살 길”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에서 경제살리기의 허구를 보게 된다. 대형 카지노 복합리조트 건설과 면세점 추가 허용 등 투자활성화 대책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대기업만 좋은 일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생업에 전념할 수 있게 국정을 안정시켜 달라는 것이다. 고집을 꺾고 소통 좀 하라는 거다. 대통령이 국민을 이기려 해서는 안 된다. 그 오만과 독선의 결과는 박 대통령 지지율을 취임 후 최저로 곤두박질치게 했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이 똑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건 박 대통령의 불통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고리 권력 몇 명을 도려내기가 그리 어려운가. ‘청와대 얼라’와 ‘청와대 조무래기’ 몇 명이 민심의 아우성보다 더 중요한가.
미국 헤리티지재단은 지난 50여 년 간의 행정부 각료와 참모 등을 인터뷰해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이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대통령 비서실 인사와 운영이다. 선거 과정에서의 공신을 비서실 참모로 임명하면 반드시 실패하며, 특정 참모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비서실장은 질서와 규율의 집행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 “몇 십 년 후 ‘아 그때 혁신을 이뤄야 할 때 하지 못해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구나’라는 원망을 받는 세대가 되지 않아야 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이렇게 되돌려주고 싶다. 몇 년 후 ‘아, 그때 문고리 권력을 도려내야 했는데 하지 못해 이렇게 망가졌구나’라는 원망을 받는 대통령이 되지 말라고 말이다.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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