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도 전면 도입보다 현행 선거제서 비례 비율 확대가 적절"

입력
2015.01.19 04:40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독일을 배우자’가 화두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서도 독일식 제도가 우리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독일식 선거제도가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우리 실정에 맞게 취사선택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따져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정당별 총 의석 측면에서 볼 때 사실상의 비례대표제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지역구의원 선거제도인 소선거구제에 비해 사표 방지와 군소정당의 의회 진출을 통한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변, 선거제도의 비례성 제고 등에 있어 장점을 지닌 제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위 ‘봉쇄조항’ 때문에 2013년 총선 결과에서 보듯 비례대표제로서의 효과가 매우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봉쇄조항은 과거 바이마르공화국의 경험을 교훈삼아 군소정당의 난립을 막고 원내 다수의 형성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성을 제고하려는 의도에서 도입됐다. 이는 독일식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에서 오는 비례성 뿐만 아니라 안정성을 적절한 수준에서 확보하려는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상으로는 비례성과 안정성의 조화를 추구할 수 있게 돼 있다. 안정성 확보에 유리한 소선거구제에 의해 지역구 의원을, 비례성 확보에 유리한 비례대표제에 의해 비례대표 의원을 각각 뽑으면서 지역구ㆍ비례대표 의원 수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례대표제이면서도 굳이 강력한 봉쇄조항을 가진 독일식 선거제도를 도입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또 독일식 선거제도는 ‘권역별 명부제’를 활용한다. 독일식 권역별 명부제는 먼저 각 정당의 전국(연방 전체) 득표수에 비례해서 각 정당에 총 의석을 할당하고, 각 정당은 이 할당받은 의석을 각 권역(각 주) 내 해당 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해 권역별로 배분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에 따르면 지역주의나 지역구도를 완화하는 효과가 일반적 기대와는 달리 매우 제한적이다.

19대 총선에서 호남지역이 하나의 권역이었다고 가정해보자. 당시 호남권 인구는 전국 총 인구의 10.3%였고, 새누리당의 전국 유효득표율은 46.1%였는데 이 중 호남권 득표 비율은 1.7%였다. 독일식 권역별 명부제를 적용할 경우 새누리당은 전국적으로 138석(300석의 46.1%)을 할당받고, 이 138석 중 1.7%에 해당하는 3석이 호남권역명부에 배정된다. 결과적으로 호남에서는 단 3명의 새누리당 의원이 선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우리나라 선거제도를 조금만 현실적으로 조정하면 새누리당의 호남권 의석 수는 더 많아질 수 있다.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까지 늘리고 권역별 명부제를 활용하되 정당 내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 수를 권역별 인구수에 비례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총 의석 수는 46석(46.1%)이 되고, 이 중 호남권(46석의 10.3%) 비례대표 의석은 5석 정도까지 가능한 것이다.

이 예는 정당별 의석의 지역적 편중현상이라 할 지역구도 완화 측면에서 현행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 비례대표의 비율을 확대하는 게 독일식 권역별 명부제보다 더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식 선거제도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비례대표에도 출마할 수 있게 하는 ‘중복입후보제’를 허용해 의원과 선거구민 간 유대를 강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지역구 낙선 후보를 부활시키는 비민주적 제도라는 등의 여러 비판도 있지만, 군소정당 소속이거나 혹은 거대정당 소속이라도 지역주의로 인해 당선이 어려운 곳에서 유력 정치인의 당선을 가능케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역구도뿐만 아니라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독일식 선거제도의 특징적 요소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따져봤을 때 독일식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선거제도 평가의 보편적 기준인 안정성과 비례성의 조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봉쇄조항을 가진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병립식 혼합형 선거제도에서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총 의석의 3분의 1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지역구 의석 수를 대폭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지금(246석)과 비슷한 240석 정도로 유지해 전체 의원정수를 360명 정도까지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우리 국회의원 1인이 대표하는 인구 규모는 독일은 물론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해도 큰 편이고, 국회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도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지역구도 및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차원에서 중복입후보제를 허용하고, 비례대표 선출 제도는 지금처럼 전국 득표수에 비례해 할당하는 전국구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있어선 각 정당의 자율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현행대로 전국구 명부를 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율적으로 권역을 설정한 뒤 권역별 인구수나 득표수에 비례해 의석을 배정하는 권역별 명부를 작성하는 것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정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