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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회장이 해고노동자를 남몰래 만난 까닭은?

입력
2015.01.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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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몰랐어요. 심지어 제가 같은 건물에 있었는데도 몰랐다니까요.”

지난 14일, 쌍용차 평택 공장에서 이뤄진 인도 마힌드라 그룹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과 김득중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의 만남은 홍보팀 관계자조차 모르게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런 경우 흔히 기자들 사이에서는 ‘물 먹었다’고 합니다. 이날 공장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오전9시쯤 평택에 도착한 마힌드라 회장은 밖에서 정리해고자 복직 및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던 해고노동자 및 가족들을 만나기를 원해 김득중 지부장과 20분 가까이 면담을 가졌습니다.

쌍용자동차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자리에는 이유일 사장, 김규한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함께 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마힌드라 회장, 이유일 사장, 김득중 지부장.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제공
쌍용자동차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자리에는 이유일 사장, 김규한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함께 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마힌드라 회장, 이유일 사장, 김득중 지부장.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제공

마힌드라 회장이 쌍용차의 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의 신차 발표회에 참석하기 위해 2011년 서울모터쇼 이후 4년 만에 한국을 찾을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가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기를 바라는 이들이 꽤 많았습니다. 우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마힌드라 회장이 직접 나서 해고자 복직 문제를 해결하기를 촉구했습니다. 평소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온 가수 이효리도 자신의 트위터에 요가 자세 사진과 함께 영문으로 “안녕하세요. 나는 이효리에요. 한국 가수입니다. 나는 오늘 요가를 하면서 당신을 생각했어요. 그들(쌍용차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에게 당신의 나라 인도의 사랑을 전해주세요. 나마스테.” 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신차 발표회 뒤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는 “굴뚝에서 농성 중인 해고노동자들 얘기를 알고 있나요. 과거 인도를 찾은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당시 해고노동자들 복직 문제에 대해 티볼리가 출시될 2014년 말 상황을 보고 얘기하자고 즉답을 피했습니다. 이제 티볼리가 출시됐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질문했습니다. 마힌드라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알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습니다”고 운을 뗀 뒤 “회사의 부와 이익을 나누는 것이 우선이지만 쌍용차는 흑자 전환 등 아직 많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쌍용차가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 2009년 일자리를 잃은 분들의 복직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겠습니다”고 답했습니다.

5분 넘게 이어진 마힌드라 회장의 답변을 들으며 고민과 준비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정성’도 느꼈습니다.

기자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예고 없는 마힌드라 회장의 면담 요청이 끝난 뒤 김득중 지부장 역시 상당히 진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기자 간담회 현장의 쌍용차 홍보팀 관계자들조차 마힌드라 회장의 길고 진지한 답변에 놀랄 정도였습니다.

마힌드라 회장은 이날 김득중 지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굴뚝에 올라가 33일째 농성 중인 이창근 쌍용차 지부 정책기획실장이 “대화합시다”라고 보낸 트위터 메시지에 “나는 지금 공장에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답글을 올린 것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마힌드라측 관계자는 “(마힌드라 회장이) 쌍용차를 비롯해 한국에서 진행 중인 마힌드라 사업 관련 보고를 매일 받으며 궁금한 점을 묻는 등 적극적으로 반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쩌면 마힌드라 회장은 해고노동자와 만남을 갖는 것도 한국에 오기 전부터 계획하고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마힌드라 회장이 쌍용차 해고자 문제 중 민감한 부분인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쌍용차는 2009년 5월에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중 희망퇴직자 1,900명, 무급휴직자 450명, 해직노동자가 200명입니다. 6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마와 싸우다 숨진 실직자와 그들 가족들은 26명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13일 대법원이 153명의 해직근로자가 쌍용차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에 대해 사측 손을 들어주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쌍용차는 해고 통보 당시 추후 희망퇴직자들을 포함해 단계적으로 채용에 나서겠다고 노조 측과 합의했습니다. 단 쌍용차 측은 그 동안 여러 차례 희망퇴직자는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감수하고 회사를 그만둔 것이며, 정리해고자는 스스로 해고를 결정한 것이라면서 회사 상황이 좋아져도 우선 희망퇴직자들의 복귀를 추진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마힌드라 회장은 이번 방한 동안 ‘2009년 일자리를 잃은 분’이라는 표현만 썼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복직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이유일 쌍용차 사장과 경영진들을 신뢰하며 그들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장은 그동안 “희망퇴직자 우선”이라는 표현을 반복해 왔습니다. 이 사장의 성향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들은 쌍용차 사태 이후 그런 언행을 감안하면 정리해고자 문제에 대해서 섣불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이 사장은 심지어 기자 간담회에서도 마힌드라 회장의 답변을 가로막으며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의 차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이 사장의 이런 모습을 보고 참석자들은 다들 당황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만약 마힌드라 회장이 그 차이를 알지 못하면 그가 말한 2009년에 일자리 잃은 분들 중 현장에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은 희망퇴직자에게만 있을 뿐 정리해고자에게 ‘희망고문’만 계속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쌍용차 측에서 마힌드라 회장이 그 차이를 알지 못하게 일부러 ‘차단막’을 치는 것은 아닐 지 모르겠습니다. 마힌드라 회장을 만난 김득중 지부장 역시 “마힌드라 회장은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의 차이를 모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쌍용차나 이유일 사장 입장에서는 마힌드라 회장이 정리해고자라고 콕 찍어 언급하는 순간 상황이 복잡하게 얽힐 것이라고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마힌드라 회장이 언급한 ‘2009년에 일자리 잃은 분’에는 정리해고자들도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방한 기간 동안 언론들은 마힌드라 회장이 정리해고자의 복직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기사를 계속 내고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흘러가다가 티볼리가 잘 팔려 희망퇴직자 중 일부가 복귀하는 상황이 되면 마힌드라 회장이 ‘약속했던’ 정리해고자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며 자칫 마힌드라 회장은 본인의 뜻과 관계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최고경영자(CEO)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지금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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