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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장률 숫자를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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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우리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 4년 만에 세계성장률을 앞지르고 금년에는 지난해보다 높은 3.8%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연중 높은 성장률을 정부 성과로 내세웠다. 새해 언론 보도나 전문가 인터뷰 역시 성장률 수준이 주 관심사이고 성장률이 떨어지면 문제가 많다는 식의 분석이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국민들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수준을 정부 능력이나 정책성과를 평가하는 지표로 여기게 되고, 정부는 성장률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 2007년에 7% 성장을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성장은 선(善)’이라는 국민들의 고정관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성장 그 자체가 일자리와 복지정책이고 많은 경제문제들을 자동적으로 해결해 주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성장률의 높고 낮음보다도 성장의 질이 훨씬 중요하다. 질 나쁜 성장은 성장률이 높을수록 빈부간 양극화는 심화되고 국민행복지수는 추락해 자살과 범죄가 급증하고 사회 분열과 갈등이 증폭된다.
이는 GDP가 갖는 한계 때문이다. GDP 성장률은 높아지면 우리 삶의 질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까지도 올라가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요소들이 같다면 교통사고, 재해, 흡연, 사교육비, 질병 등이 많을수록 성장률은 높아진다. 반면 소득분배의 형평성이나 복지수준 등 삶의 질은 GDP 산정에 반영되지 못한다. 국민 90%가 소득이 증가하지 않더라도 상위층 10%의 소득이 크게 증가하면 성장률은 올라간다. 또한 일부 대기업이 원자재와 부품을 주로 수입하거나 낮은 납품단가를 통해 이뤄낸 수출실적은 성장률에는 크게 기여할지언정 서민경제나 일자리 창출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
해법은 GDP 성장 뒤에 숨겨진 이런 어두운 그림자를 벗겨내야 찾아질 수 있다. 우선 성장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양적 성장에서 국민행복 중심의 질적 성장으로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바꿔나가야 한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미 선진국들은 정책방향을 수정했고 최근 중국마저 ‘신창타이’(新常態ㆍ새로운 상태)를 당당하게 선언하고 이 대열에 합류했다.
글로벌 추세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우리는 MB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줄기차게 감세기조를 유지하면서 시장에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단기부양책을 밀어붙여 왔다. 구조개혁 없이 돈만 쏟아 붓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새듯이 약발은 없고 전세가격 폭등과 재정위기 및 가계부실 등의 부작용만 커지고 있다. 이후 보수진영에서까지 초이노믹스에 대해 따가운 질책이 제기되자 정부는 지난해 말 뒤늦게 구조개혁에 관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공공ㆍ노동ㆍ금융ㆍ교육 등 4대 부문의 구조개혁, 경제의 역동성 회복, 내수확대를 통한 내수와 수출의 균형 등을 구조개혁방안으로 제시했다.
개혁방안들은 백화점식으로 잘 나열돼 있지만 구조개혁을 위해 성장둔화까지 감수하겠다는 변화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경제를 보는 큰 철학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정부 시각이 물질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물질을 버리자는 게 아니라 그간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돼 소홀히 해왔던 사람을 위한 물질로 다시 자리매김하자는 것이다. 또한 시장이 만능이라는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장과 정부의 아름다운 동행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다시금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보루는 국민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자기 임기 중의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만 맡겨둬서는 안된다. 국민들이 끊임없이 질 좋은 성장을 요구하고, 언론과 전문가들은 성장률 수치 대신 성장으로 인해 늘어난 일자리와 가계소득의 정도를 따져야 한다. 성장의 질과 내용을 중시하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질 때 비로소 구조개혁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은 완성된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성장,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용섭 중국사회과학원 초빙연구원ㆍ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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