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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그들에게 길을 내 주어라”

입력
2015.01.09 14:42

한국의 세대갈등은 이미 단절 수준

"시대의 주역은 우리가 아닌 그들"

기성세대가 먼저 달라지도록 노력을

‘대한민국은 갈등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갈등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갈등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의 두 항을 바꿔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헌법 제1조에 곡을 붙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런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일 자체도 갈등 유발요인이었다.

대한민국의 갈등은 남북 이념 지역 세대 계층, 이 다섯 가지에 의해 증폭되고 확대되고 있다.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은 2015년 새해에도 이 갈등은 해소되거나 쇠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고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

다섯 가지 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남북갈등은 분단 이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조건과 삶을 좌우하고 있는 상수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 이념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통일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서 진영논리에 함몰된 대립과 갈등이 일상적으로 빚어지고 있다. 지역갈등의 경우는 통계적으로 말할 근거는 없지만 ‘망국적인’ 사회문제로 인식되던 30년 전쯤과 비교할 때 이제 훨씬 약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의 정권교체와 국민들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가지, 세대갈등 계층갈등은 갈수록 커지고 심각해지고 있다. 세대갈등은 연령과 집단 간의 충돌이 이념과 가치관의 충돌과 중첩됨에 따라 더욱 커진다. 지금은 갈등의 단계를 넘어 단절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변호인’에 열광하는 세대와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세대의 간극은 크다. 상호 이해와 공감의 폭이 아주 좁다. 여기에 TV드라마 ‘미생’에 열광하는 세대의 불편과 소외감이 겹친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 대해 철없고 분별없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교양이 모자라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반면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낡고 부패하고 이념적으로 진화되지 못한 세대, 나이만 많을 뿐 이 시대에 별로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과 논리를 젊은 세대가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이해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요구를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긴다. 문제는 서로 차이를 인정하는 데 서투르다는 점이다.

이런 갈등과 단절을 풀려면 먼저 기성세대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현대사회의 문화는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주인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라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말해 ‘나의 시대는 갔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교훈을 남기거나 좋은 말을 주입하려 하지 말고 젊은이들의 언어로 자신의 삶과 생각을 재구성해 송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의 고생과 노력에 대해 ‘황혼연설’을 하기보다 그냥 고백하듯 자신의 시대와 삶에 대해 증언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송나라 때 문단의 맹주였던 구양수는 소동파를 과거에서 뽑아 놓고 “이 늙은이는 이제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문인들이 형벌보다 구양수의 평가를 더 두려워했다는 시절에 구양수는 새로운 천재의 등장을 알아보고 성장을 도왔다.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인 1969년 4월 하버드대의 일부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점거해 행정이 마비되자 네이던 M 퓨지(Pusey) 총장은 교무위원회를 소집해 격론 끝에 경찰을 불러들여 사태를 해결했다. 그리고 임기를 2년이나 남기고 이듬해 총장직을 사퇴했고, 자신의 반대편에 서서 경찰 진입을 강력 반대했던 복(Bok) 법대학장이 후임 총장이 되도록 애썼다.

2차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는 퇴역 후 콜럼비아대학 총장일 때 학생들이 본관 앞 잔디밭으로 다니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겠다는 직원에게 “거기에 길을 내주라”고 했다. 학교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다니는 데는 그만한 이유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니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젊은 세대에게 길을 내 주려는 생각을 해야 한다. ^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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