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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입에 재갈 물리는 조치 오히려 늘어… 선거운동의 자유를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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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선거를 설계하려면 정당보다 유권자들에 더 주목해야 한다. 정책선거의 체현은 전적으로 유권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정책을 생산하고 제시하는 데에 분명 정당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정당이 아무리 세련되고 차별적인 정책들을 제시해도 유권자가 정치적 선택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선거가 시민들 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찬반으로 떠들썩해진다면 정책은 장터의 국밥처럼 선거를 더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유권자들에겐 자유로운 입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 공직선거법은 누구든지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정당 또는 후보자 그리고 그 정책을 지지 혹은 추천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제93조 1항). 정당과 후보자의 정책도 비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인형이나 마스코트를 부착할 수도 없고 피케팅을 하거나 현수막을 내걸 수도 없으며 각종 퍼포먼스도 금지되어 있다(제90조). 한마디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의 모든 행동이 금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돈을 묶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취한 조치라고 방어벽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취지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잠시 더 살펴보자.
2011년 대법원은 무상급식 정책에 대해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혹은 비판했다는 이유로 한 사회운동가에 유죄를 선고했다. 역시 같은 해 대법원은 ‘표를 던져 4대강을 죽이는 악의 무리를 물리쳐라’는 문구가 들어간 손팻말을 게시한 한 환경운동가에게도 유죄를 선고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낙선을 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는 취지에서다. 돈 문제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정책이 정당이나 후보자와 한데 묶여 유권자의 입에 오르내릴 때 ‘죄’가 되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선거운동을 위해 서명운동이나 날인을 할 수 없다(제107조). 정당이나 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을 비교 평가한 결과를 공표할 수도 없다(제108조의 2). 정책 캠페인의 손과 발이 모두 봉쇄되어 있는 셈이다. 이 밖에 후보자비방죄(제251조)는 후보자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를 비난으로 판단하게 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 굳이 문제가 된다면 형사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면 될 일인데도 말이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낯설어 이런 것도 있었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모든 선거법 조항들은 누구든지 쉽게 걸려들 수 있고 실제 빈번하게 적용되어온 살아 있는 규제 장치들이다.
선거운동기간도 너무 짧다. 선거법은 대통령선거는 23일,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선거는 14일로 선거운동기간을 규정하고 있다(제33조). 정책을 알리거나 평가하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다. 선거운동기간을 늘이면 돈을 많이 쓸 것이라고 우려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자금을 총량으로 규제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규제 장치들의 기원이 1960년에 제정된 「국회의원선거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50여 년 동안 강산이 족히 다섯 번은 바뀌었을 법한데 유권자의 입을 묶는 조치들이 사라지기는커녕 잔가지들이 더 불어난 모양새이다. 이런 환경에서 아무리 정당들이 차별적인 정책을 내놓고 중앙선관위가 메니페스토 정책 의제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되기 십상이다.
획기적으로 바꿔보는 것이 어떨까. 몇 해 전 중앙선관위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었다. 유권자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획기적으로 늘이는 내용이 상당히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는 공청회를 통해 전문가와 유권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아직까지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어차피 선거구재획정을 위해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이 참에 선거법도 개정하자. 유권자들에게 보다 많은 선거운동의 자유를 부여하자. 정책이 자유롭게 춤추게 하자.
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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