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공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與·野 기득권 내려놔야"

입력
2015.01.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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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중심 정책선거 활성화 위해 명함·현수막 규격 제한 등 없애야"

정당 요건 완화해 정치주체 늘리고 중대선거구제 도입안 등도 거론돼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선거부정 감시 활동이 펼쳐지고 있지만, 흑색선전과 금품·향응 제공 등 부정선거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시선관위가 주최한 선거부정 감시단 발대식 모습. 신상순 기자ssshin@hk.co.kr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선거부정 감시 활동이 펼쳐지고 있지만, 흑색선전과 금품·향응 제공 등 부정선거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시선관위가 주최한 선거부정 감시단 발대식 모습. 신상순 기자ssshin@hk.co.kr

정책 선거를 향한 해법은 시민사회와 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 거대 정당과 후보자 중심의 선거문화를 유권자 중심으로 바꿔야 정책선거가 가능하다고 보고, 규제 중심의 정치관계법을 개정해 참정권을 확대하고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강화하자는 게 정치권 바깥의 요구사항이다. 정치권도 정책선거의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입법의 키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ㆍ새정치민주연합 양대 정당은 시민사회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돈 막고 입 풀자’…선거운동 방식 제한 없애야

시민단체들은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누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권자 스스로 정당ㆍ후보의 정책에 대한 생각을 내놓고 다른 유권자들과 활발히 토론할 수 있을 때 정책선거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와 한국YMCA전국연맹ㆍ한국여성단체연합ㆍ흥사단 등 진보ㆍ보수 성향을 망라한 전국 500여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 등) 개정 입법청원안도 표현의 자유 강화가 핵심이다. 선거기간 동안 연설회ㆍ집회ㆍ행렬 등 정책 캠페인의 주요 수단을 규제하는 법 조항과 언론과 단체의 정당ㆍ후보자 정책 비교평가를 사실상 금지하는 법 조항을 삭제하는 등 정책선거를 활성화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시민단체들은 특히 허용된 선거운동 방식을 제외한 모든 선거운동 방식을 금지하는 현행 공직선거법 체계를 법에 규정한 금지사항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우리나라 선거법은 ‘돈은 막고 입은 풀자’는 제정 취지와 달리 오히려 유권자의 입을 가로막는 재갈로 작용하고 있다”며 “반면 정책선거가 활발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선거운동 방식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대신 선거자금에 대한 통제를 엄격히 해 금권선거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유권자 참여운동을 한 정치외교학부 연합동아리 ‘여정’의 대표 황재림(서울대 정치외교4)씨도 “정책선거를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여야 할 텐데, 명함이나 현수막 규격까지 법령을 제한하는 현행 선거관련법이 정책선거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공천부터 정책 경쟁 돼야”…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목소리도

학계에서는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단계부터 정책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앙당이 아닌 당원협의회 등과 같은 정당의 지역조직이 정당의 공천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정당공천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희봉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역주의에 기반한 양대 정당에서 공천을 받기만 하면 당선을 보장받는 정치 현실에서 후보자가 정책 개발보다는 중앙당의 공천에 목을 매는 게 현실”이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 제도 도입과 같은 공천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직접 공천권을 행사하는 만큼 지역성은 배제되고 소속 정당의 정강에 기반한 정책 경쟁이 예비후보들 간에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정당 설립 요건을 완화해 지방정당ㆍ네트워크 조직 등의 다양한 정치주체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역사회와 밀착해 주민들의 요구에 걸맞은 정책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방정당이 활성화할 경우 정책 중심의 책임정치가 가능해진다는 견해다. 당원 참여와 민주적 토론을 보장 등 당내 민주주의 확보도 과제로 꼽힌다.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비례대표 숫자를 늘리고 국회의원 선거에도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도 정책선거 활성화의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김경기 정치발전소 기획실장은 “정책적으로 크게 차별화되지 않은 양당이 기득권을 쥐고 있는 한국 정치현실에서 유권자들은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비례대표 확대와 중대선거구제 도입으로 정치신인 및 군소정당이 제도정치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정책 경쟁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기득권 내려놓고 스스로 변해야”

정치권 바깥의 대안 모색은 활발하지만 정치권 스스로 입법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나 마찬가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13년 언론이나 단체가 선거 후보자의 정책공약을 비교 평가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정치권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당시 개정의견에는 선거운동 기간 제한을 없애고 선거운동 방식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의 개혁안도 포함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방안 중 다수는 현역 정치인들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라며 “정책선거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존 정당들의 적극적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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