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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 보스 입김이 좌우… 공천받으려면 줄 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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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 민주당 공천심사위 구성부터 제1원칙은 계파 안배
2008년 총선 한나라당 공천선 "친이계 주도… 친박계 학살"
한국 정치에서 공천은 늘 1순위 개혁 대상으로 꼽혔다. '정당이 공직후보자를 추천하는 일'을 말하는 공천에는 나눠먹기, 밀실, 정략 같은 부정적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민의와 시대정신은 뒷전에 밀린 채 계파 보스나 당 지도부 등이 당락을 좌지우지한 후진적 하향식 공천 방식이 문제의 근원이다.
묻지 마 계파 공천
정치인은 늘 국민을 대표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공천을 줬거나 앞으로 공천을 줄 힘이 있는 계파 보스의 뜻을 대표하는 경우가 많다. 차기 총선 공천 티켓은 계파 줄서기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진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 조항은 정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일 수밖에 없다.
계파 공천은 2012년 19대 총선 때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극에 달했다. 당 지도부 경선 직후라 계파들이 할거하고 한명숙 당시 대표의 리더십이 안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천심사위 구성의 제1 원칙은 계파 안배였고, 심사위 바깥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공천을 마구잡이로 주물렀다. 익명을 요구한 당시 심사위원은 5일 "수치화할 수 없는 당선 가능성 등 각종 명분으로 각 계파의 입김이 비집고 들어왔고, 일부 심사위원은 자신의 계파에 정보를 흘렸다"며 "당내 실력자들이 후보들을 찍어 내리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전했다.
정당성과 원칙을 결여한 공천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낙천자들은 공천효력 정지 가처분소송을 내는 등 집단행동으로 당을 흔들었고, 총선 직전까지 국회 앞은 낙천에 항의하는 농성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이해찬 당 상임고문이 기득권공천 결과에 반발해 탈당을 위협하고서야 도덕성 시비에 휘말린 임종석 사무총장이 공천과 당직을 반납한 것은 당시 공천의 난맥상을 상징하는 사례다. 이 같은 공천 실패는 총선 패배로 이어졌고 '박풍(박근혜 대통령의 바람)'을 꺾지 못한 총선 패배는 연쇄적으로 12월 대선 패배로 귀결됐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2008년 18대 총선 공천도 최악의 계파 공천 사례 중 하나다. 2007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결과를 놓고 친박계 인사들이 "친이계가 친박계를 학살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성토할 정도로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극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낙천한 친박계 인사들에게 "꼭 살아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낙천자들이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로 출마했다가 친이계 후보들을 꺾고 대거 귀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나눠먹기 밀실 공천
계파끼리 나눠 먹는 공천이 가능했던 것은 공천심사가 소수의 위원들로 급조된 공천심사위에서 문을 꽁꽁 닫은 채 비공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또 공천 규칙이 공직선거법이나 각 정당의 당헌ㆍ당규에 명시돼 있지 않고 그 때 그 때 만들어진 탓에 일부 공심위원이 밀실에서 계파 이해에 충실한 공천에 전념할 여지가 더욱 컸다.
여야는 중립성을 확보하겠다며 공심위에 외부인사를 불러들였지만, 적지 않은 인사들이 거수기 역할에 그쳤고 반대로 정치 현실과 동떨어진 공천을 밀어붙여 전체 공천결과를 망가뜨린 경우도 있었다. 새누리당의 18대 총선 공심위원은 "모 인사가 단수 공천자로 올라오자 그와 앙숙인 한 공심위원이 심사 중단을 주장했다가 어딘가에서 전화를 받고서야 수용한 일이 있다"고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18대 총선 공심위원은 "공심위에서 결정한 후보를 놓고 한 당직자가 '우리 사람이 아니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자 결국 해당 지역을 재심사했다"고 털어 놓았다. 총선 때마다 계파들끼리 '꼭 살려야 할 인사와 날려도 되는 인사 명단'을 주고 받았다는 얘기가 나오거나 당 안팎에서 살생부가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여야가 국민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나눠 먹기를 일삼는 데는 소선거구제에 근간한 영ㆍ호남 지역주의 하에서 "우리 당 간판으로 누구라도 내세우면 당선된다"는 오만한 인식이 깔려 있다. 계파 공천-국회의원 자질 저하-재선을 위한 계파 줄 서기-계파 정치 강화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전략 공천? 정략 공천!
전략공천은 당 지도부나 공심위가 낙점한 경쟁력 또는 상징성을 갖춘 후보를 접전ㆍ열세 지역이나 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지역에 공천하는 제도다. 그러나 계파 보스나 당 지도부가 자기 사람 심기나 상대 계파 견제에 악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 여권 인사는 "'급하니까, 또는 중요한 지역이니까 전략공천으로 가자'고 분위기를 몰아 간 뒤 특정 인사들이 미는 후보들을 막판에 밀어 넣는 식"이라고 전했다.
지난 해 7ㆍ30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전략공천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광주 광산을에 무리하게 전략공천 하느라 이 지역에서 선거를 준비 중이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서울 동작을에 돌려 막는 바람에 당과 후보들이 내상을 입었다. 새누리당도 경기 평택을에 공천 신청한 임태희 전 장관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등 원칙 없는 전략공천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전략공천은 잘 활용하면 여성과 소수자를 당내 예선 경쟁 없이 공천해 당선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새누리당 19대 총선 공천심사에 관여한 인사는 "지역별로 여성 후보 최소 한 명을 전략공천한다는 약속을 지키기가 어렵게 되자 한 여성 후보의 공천지역을 3,4차례 옮기기도 했다"며 "지역구민들이 어떤 후보를 원하는가는 뒷전인 셈"이라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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