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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 靑 눈치보다 망신 자초한 것 아닌가

입력
2015.01.01 16:39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 수사 태도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지침’에 맞춰 무리하게 수사를 하다가 망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조 전 비서관에 대해 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 혐의 사실의 내용, 수사진행 경과 등을 종합해 볼 때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실상 혐의 입증이 미진하다는 뜻이다.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불거지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고 단정했다. 이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곧바로 “문건의 신빙성은 6할 이상”이라며 맞받아쳤다. 정윤회씨가 “문고리 3인방과 몇 년째 연락조차 없었다”고 한 말이 거짓말로 들통난 것도 조 전 비서관의 폭로 때문이었다. 지난 4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정씨의 부탁을 받고 조 전 비서관에게 정씨의 전화를 받으라는 연락을 해온 사실이 그의 폭로로 드러났다. 이래저래 청와대로서는 조 전 비서관이 껄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수사 착수 이후 상당 기간 조 전 비서관을 참고인으로 여겨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뒤늦게 강공으로 돌아선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청와대 하명으로 시작된 이번 수사는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문건을 찌라시로, 문건 유출을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면서 맥 빠진 수사가 됐다. 검찰은 진작에 ‘십상시’의 정기적 회동이 없었다며 이를 근거로 정씨의 국정개입을 사실무근으로 결론지었다. 그리고는 문건 유출 수사에 매달려 박관천 경정을 구속했으나 수사과정 내내 잡음이 계속됐다. 문건 유출에 관여한 것으로 지목된 주요 인물 가운데 한 명은 자살하고 다른 한 명은 잠적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수사결과를 5일 발표하고 마무리할 계획이지만 본질인 국정농단 의혹은 밝혀진 게 없다. 십상시 회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비선 실세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개입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정씨를 둘러싼 의혹은 유진룡 전 문화부 장관의 증언을 통해서도 일부 드러났다.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정보경찰이 청와대로부터 회유를 받았다는 의혹조차도 검찰은 확인하지 않았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청와대의 주문에 충실히 따랐다는 오명을 뒤집어써도 할 말이 없다.

청와대는 검찰에 사건을 넘겨 면죄부를 얻었을지 모르나 검찰은 상처만 얻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 이상이 검찰 수사로는 미흡해 특검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제 비선 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어떻게 밝혀낼지 정치권이 답을 내놓아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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