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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정은 신년사, 남북관계 전기로 삼을 만하다

입력
2015.01.01 16:30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어제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의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며 고위급 접촉 재개는 물론 최고위급(정상) 회담을 포함한 남북간 대화와 협상, 교류 의지를 밝혔다. 정상회담까지 직접 거론한 것으로 보아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전례 없이 강한 신호로 받아들일 만하다. 앞서 우리측이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명의로 남북 당국 회담을 제의한 데 대한 화답 성격도 있어 조만간 북측의 구체적 회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할 것”이라며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했다. 남북 간 대화ㆍ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한 남북 정상의 메시지는 광복 70년, 분단 70년이라는 올해의 역사적 좌표와 무관하지 않다. 남북 안팎의 환경도 서둘러 대화의 돌파구를 열라는 압력으로 작용해 왔다. 북한이 경제 제재와 ‘인권 압박’ 등 국제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측과의 관계개선을 피해갈 수 없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경제 강국’의 길을 열어가기 위해서도 남측과의 협력이 가장 절실하다. 반면 이명박 정부 이후 지속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남측의 최우선 과제가 돼왔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괄하는 경제ㆍ에너지 협력체 구상인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도 대북 협력은 불가결하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3년 탈상과 함께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의 정치적 자신감 등 남북한 정부의 내적 요인의 변화도 가벼이 여기기 어렵다.

물론 이런 긍정적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가 현재의 복잡한 걸림돌을 뛰어넘어 획기적 진전을 이룰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당장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김정은 신년사의 방점과 의도부터가 혼란스럽다. 한미군사훈련을 핵전쟁 연습으로 규정해 문제 삼고, 인권 등 국제 압력을 우리측 모해로 간주하고, 체제 존엄의 훼손(대북전단 살포)을 거론한 것으로 보아 대화 분위기는 언제든 급속히 냉각될 수 있다. 더욱이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한 북남 관계 개선을 하려는 입장이라면”이나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라는 식으로 고위급 및 최고위급 회담의 조건을 달아 둔 것은 우리측의 자세 변화부터 요구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과 남이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 않는(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헛되이 하지 말고 북남 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한다”는 말을 살려, 우리 정부가 모처럼 열린 남북대화와 협력의 진전 가능성을 꽃피워 나갈 수는 있다. 남북 관계를 융통성 있게 선도해 가려는 결단만 있다면 된다. 적어도 2월까지는 특별한 장애가 없는 만큼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문화교류사업, 5ㆍ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핵심 현안에 대한 실질적 진전을 이뤄 신뢰 기반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북측의 구체적 행동변화도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 협력의 전면적 확대는 북핵 문제의 진전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분명한데도 김정은은 “핵 억지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억척같이 다질 것”을 강조하고 있어 안타깝다. 북한이 시대착오적 인식의 한계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대북 안보태세를 늦출 수야 없지만, 그럴수록 대화와 협력만이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이끌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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