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컨테이너 교실 벗어나 옛 보금자리서 새 출발"

입력
2015.01.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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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학교서 적응 못한 청소년과

배움 시기 놓친 만학도 등 770명

건물 붕괴 위험에 화곡동 떠났다가

'임대 살림' 길어지며 폐교 위기도

"새해엔 소외계층 교육 더 힘써야죠"

김한태(왼쪽에서 2번째) 교장, 김영찬(왼쪽에서 3번째) 교감 등 성지중고 선생님들이 31일 보수 공사를 끝낸 강서구 화곡 본동 본교 건물 앞에서 새 출발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한태(왼쪽에서 2번째) 교장, 김영찬(왼쪽에서 3번째) 교감 등 성지중고 선생님들이 31일 보수 공사를 끝낸 강서구 화곡 본동 본교 건물 앞에서 새 출발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소외계층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폐교 위기를 벗어나 6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대안학교 성지중ㆍ고등학교의 김영찬(52) 교감은 다시 문을 여는 소감을 31일 이렇게 밝혔다.

성지중고는 소외된 청소년들과 배움의 시기를 놓친 중장년층을 위해 만들어진 대안학교다. 1972년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노동자들의 야학으로 시작했다가 81년 영등포에서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으로 이전해 학력인정학교로 거듭났다. 현재 학생 770여명 중 70%가 청소년이고 나머지는 만학도들이다.

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일반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다 이곳 성지중고 문을 두드렸다. 한때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집합소’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실은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을 품어온 마지막 보루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3’에서 우승한 그룹 ‘울랄라세션’의 리더였던 고 임윤택씨와 아이돌그룹 ‘틴탑’의 천지 등이 이 학교 졸업생이다.

그랬던 이 학교는 최근 몇 년간 어려움을 겪었다. 2008년 건물이 노후해 붕괴 위험이 있다는 진단에 따라 보금자리였던 화곡본동을 떠났다. 임시로 옮긴 곳은 강서구 방화동 소재 서울시 땅을 임대해 세운 ‘컨테이너 교실’이었다. 컨테이너에서 하는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김군순(52ㆍ성인 2학년1반)씨는 “비가 오면 천장을 울리는 비소리 때문에 선생님 이야기가 안 들리는 등 수업에 지장이 컸다”고 말했다.

계획대로면 ‘임대 살림’은 2010년으로 끝나야 했다. 원래는 화곡본동 부지에 12층짜리 건물을 새로 지어 1, 2층을 상가로 임대해 번 돈으로 공사비를 댈 생각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1년에 약 200만원)로는 학교 운영도 빠듯한 상황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신축 공사비를 따로 마련할 수 없었다. 이렇게 공사가 미뤄지면서 계획은 옛 건물 보수로 바뀌었다. 보수공사 비용 2억여원은 김한태(81) 교장이 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임대 살림’이 길어지면서 폐교 위기가 닥쳤다. 2012년 서울시 조례 개정으로 임대료가 두 배 급등할 위기에 처했다. 가까스로 서울시와 의견이 조율돼 임대료(3억원)는 유지됐지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의견을 조율하는 6개월간 계약 없이 땅을 무단 점거한 상태가 돼버려 과태료를 1억7,500여만원이나 내야 했다. 김 교감은 “최근 3년간 선생님들 호봉도 올려주지 못할 만큼 재정적으로 어려웠다”며 “본교 터로 돌아오면서 임대료 부담을 덜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래 보금자리로 돌아온 성지중고는 이전보다 외연을 확장한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다문화 가정, 새터민, 조손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도 올해 도입하기로 한 것. 2년 과정의 성인반(1년 3학기)과 3년 과정의 학생반(1년 1학기)을 운영하면서 어학, 피부미용, 실용음악 등을 가르칠 계획이다.

올해부터는 교장도 바뀐다. 성지중고 설립 때부터 일해온 김한태 교장은 학교 이사장으로 교육 소외계층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김 교감이 교장직을 물려 받기로 했다. 김 교감은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새해부터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더욱 열정을 갖고 지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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