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땅콩 패러디' 봇물에 외신도 앞다퉈 비난… 재벌 갑질 행태에 전세계가 부글

입력
2014.12.13 04:40

"反재벌 정서 폭발" 분석도

'땅콩리턴'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기전 사과를 하고 있다.조 전 부사장은 지난 5일 뉴욕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승무원의 견과류 제공 서비스 문제로 사무장을 질책하며 항공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땅콩리턴'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기전 사과를 하고 있다.조 전 부사장은 지난 5일 뉴욕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승무원의 견과류 제공 서비스 문제로 사무장을 질책하며 항공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또 한번의 마녀사냥인가, 아니면 재벌에 대한 반감의 투영인가.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에 대한 조롱과 비난 섞인 패러디가 확산되고 있다.

한 네티즌이 유튜브에 올린 ‘땅콩항공 CF’는 12일 47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1분 30초 가량의 이 동영상은 “일등석 고객님께는 특별히 바로 수확한 땅콩을 까서 그릇에 받쳐 드린다”는 내레이션이 나오는 등 시종일관 조 전 부사장을 비꼬고 있다. ‘조현아 게임’도 떠돌고 있다. ‘승무원 타이쿤’이란 이름의 미니게임은 회항 당시 사건을 재구성한 풍자로 네티즌의 폭발적 지지를 받고 있다. 9일 한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이 엄청난 양의 콩을 맷돌에 가는 작업을 두고 “콩 때문에 비행기를 돌릴 수도 없다”는 자막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문제가 된 땅콩류 ‘마카다미아’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파워 아이템에 등극했다. 아예 ‘대X항공 부사장 봉지 땅콩’으로 제품명을 소개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는 쇼핑몰도 나왔다.

해외에서도 불매운동과 신랄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을 인터넷 홈페이지 가장 윗자리에 내건 미국 CNN방송을 비롯해 뉴욕타임스와 BBC 등 세계 유수 언론들이 앞다퉈 조 전 부사장의 행위를 ‘땅콩 사건(Nuts Incident)’으로 명명하며 원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9일 “땅콩 회항은 ‘재벌왕국’의 단면”이라고 규정한 뒤 한국의 재벌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한인학부모협회와 퀸즈한인회가 12일 대한항공 불매 캠페인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는 등 동포사회에서도 대기업 오너 일가를 비난하는 움직임이 거세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비난 열풍에는 한국사회의 반재벌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대학생 구민정(24ㆍ여)씨는 “선망의 대상인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많은 댓글이 달리듯, 조 부사장은 일반인이 누릴 수 없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비판의 강도가 더 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창업 1세대와 달리 별다른 노력 없이 거대 자본을 물려 받는 재벌 2,3세들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의 평가가 더욱 냉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권력적 행동을 패러디를 통해 응징하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냉소와 비아냥이 기업에 미치는 타격이 훨씬 크다고 지적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론이 분노를 하면 당사자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이성적인 전략을 사용할 수 있지만, 조롱 단계에서는 진화노력을 하면 할수록 그에 맞는 더 높은 수위의 조롱이 재생산돼 타협의 여지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갑질 행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도 조현아 현상을 부채질한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일본에서 직장 상사에 의한 괴롭힘을 의미하는 ‘파와하라(Power Harassment의 일본식 표현)’가 유행하고, 국내에서 직장생활의 애환을 그린 웹툰 원작 드라마 ‘미생’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점 등은 땅콩 회항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김준호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대중은 사건 당시 사무장이 어떤 잘못을 했느냐보다 상급자에게 모욕당하는 약자로서의 개인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수직적 권력관계에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