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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꽃보다 국정개입

입력
2014.12.11 19:37

권력자는 측근암투와 권력누수 고민

국민에게는 국정개입이 중대한 문제

관심의 방향 틀어버린 검찰과 청와대

'비선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11일 오전 청사를 나오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정씨는 청와대 문건의 골자인 비서진과의 비밀회동설에 관해 진술한 뒤 박관천 경정과 대질조사를 받았다. 연합뉴스
'비선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11일 오전 청사를 나오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정씨는 청와대 문건의 골자인 비서진과의 비밀회동설에 관해 진술한 뒤 박관천 경정과 대질조사를 받았다. 연합뉴스

11월 28일 세계일보가 청와대 문건을 특종 보도했을 때만 해도 쟁점은 대통령 ‘실세’의 국정개입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대통령 딸의 사조직인 구국봉사단의 총재를 지낸 최태민씨의 (전) 사위이자 2007년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를 지낸 정윤회씨가 현정부에서 직위도 없는 채 비서실 인맥을 통해 정국에 개입한다는 것을 지적한 기사였다. 문건의 표기방식은 정부문서라고 하기엔 조잡했지만 정윤회씨와 청와대 비서실의 핵심인사들이 만난 시기와 장소까지 적혀 있었다. 지난 1년간 일어난 권력 내 돌발 인사이동의 의문도 풀리는 듯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 내용을 ‘찌라시’라고 무시하고 책임 없이 보도한다고 언론을 비난하면서도 발언과는 상반되게 ‘대통령 관련 (비밀)문건’으로 인정하고 외부로 유출된 경위를 검찰이 밝힐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의 잇따른 보도로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씨 딸의 승마경기와 관련해서 문화체육부의 국장과 과장을 날리라고 했다는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증언이 나오면서 정윤회씨의 국정개입은 기정사실화하는 듯했다. 물론 청와대는 부인했다.

대체로 국가기관의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이 같은 즉각적인 부인권, 다시 말해 즉각 해명할 권리가 한몫을 한다. 그 해명을 모든 언론이 다 실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의 속성상, 최고 권력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서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정황이면 권력비판 보도는 다소 오보의 여지가 있어도 위법성이 문제되지 않는 것이 언론판례의 방향이었다. 대통령의 측근이 불법한 국정개입을 하고 있다면 이것만큼 언론이 급하게 보도해야 할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해명’과 이에 따른 검찰의 수사방향에 따라 사건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측근의 국정개입이 아니라 청와대를 둘러싼 측근끼리의 암투가 초점이 되고 국정개입 의혹을 사던 정윤회씨는 피해자로 둔갑한다. 뿐만 아니라 국정개입의 통로가 되었다 보도된 청와대 비서진이 세계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권력암투의 반대축으로 소개된 김기춘 실장은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를 역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은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측근과 정윤회 측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윤회씨 본인은 책임이 없다는 걸로 흘러가고 있다. 정윤회씨 딸과 연관된 문화체육부 인사개입설은 저 멀리 흘리고 유출된 문건을 누가 어디서 들은 정보로 작성하고 그게 어떤 경로로 외부에 공개되기에 이르렀는가만 추적하는 검찰 수사 덕분이다.

정윤회씨가 국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면 억울함은 당연히 풀어줘야 한다. 동시에 그가 국정에 개입했느냐 여부는 반드시 밝혀야 하는 일이다. 권력암투가 권력누수를 불러와서 권력자에게 치명적인 사건이라면 국정개입은 감시와 비판도 없는 암흑지대에서 정책을 잘못 이끌어 국가 전체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 권력암투는 권력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선 이들에게 중요한 일이지만 국정개입은 국민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어느 부분을 더 중요하게 수사해야 하는가는 검찰도 청와대도 대통령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검찰수사도, 청와대 발표도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언론으로서는 검찰과 청와대 발 보도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동생 박지만씨가 저축은행 관련 비리로 입길에 오르내릴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는 “동생이 아니라지 않았느냐”는 말로 수사할 여지를 차단했다. 이번에도 대통령은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니 “오래 전에 나를 떠난 사람”이라는 말로 정윤회씨의 국정개입설을 봉쇄한다. 객관적인 검증은 받을 필요가 없다는 태도이다. 이러면 항간에는 의혹이 더 증폭된다는 사실을 대통령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무얼 했느냐는 질문에 아직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은 대통령이다. “확인도 하지 않고 무책임한 보도를 한다”는 말은 언론의 의문에 확인을 해준 다음에 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제라도 청와대와 검찰은 권력암투가 아니라 국정개입이 있었느냐는 온 국민의 관심사에 수사의 총력을 기울이도록 방향을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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