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性희롱·차별 실상 일깨운 고용부의 '면접요령'

입력
2014.11.16 16:04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채용정보망 워크넷에 최근 실렸던 여성 구직자의 면접 답변 요령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성희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성에 대한 가벼운 말 정도면 신경 쓰지 않겠고, 농담으로 받아 칠 여유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로 답하도록 권했다. 또 성희롱과 관련한 질문에 대한 설명에서는 ‘최근 관련 재판도 많고, 지나치게 예민한 여성 사원에게 곤란을 당한 회사도 있다. 도량을 넓혀 독자적인 견해를 말하라’고 해 놓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14일 워크넷의 여성구직자 면접요령 내용을 문제 삼아 성명을 내자 고용노동부가 곧바로 삭제하고 게재 경위 파악에 나섰지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길 일이 아니다. 고용알선을 전문으로 해온 국가기관 직원이 사례나 표현을 과장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성희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물론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성차별적 장벽이 다수 기업에 아직도 만연해 있음을 일깨운다.

면접 모범 답변 내용을 보면 결혼 예정 시기를 묻는 물음에 ‘현재로서는 결혼계획이 없다’고 답하도록 권했다. 또 업무를 제대로 할 만하면 퇴사하는 일이 흔해 기업들이 결혼 예정자나 오래된 애인이 있으면 채용을 꺼린다는 설명을 덧붙여 ‘구체적 (결혼)계획이 없다. 일에 열중하고 싶다’는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커피 타오기나 복사 같은 잔심부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한 잔의 커피도 정성껏 타겠습니다’는 식으로 대답하도록 했다.

기업마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매년 정기적으로 하도록 의무화한 게 15년 째이고, 남녀고용평등법이 발효된 지 30년이 다 돼가는데도 아직 저 모양이냐는 탄식이 절로 나올 만하다. 법 규정은 있으나 종이에 적힌 잉크에 지나지 않아 기업은 무관심하고, 관리ㆍ감독해야 할 고용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는 게 아니고서는 저 따위 면접 요령이 정부 채용정보망에 버젓이 올라올 수 없다.

최근 물의를 빚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성추행 행각도 구시대적 행태가 여전한 현실의 반영이라고 봐야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확대하고, 경력 단절을 줄여가는 것이 국가적 정책 목표가 된 지금, 법규를 외면한 채 여성 구직과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성희롱, 성차별 문화가 변함없이 힘을 발하고 있다면 이만저만 큰 일이 아니다.

고용부는 황당한 면접요령 작성 경위의 파악이나 고용정보원 직원 성교육 등으로 미봉할일이 아니다. 설문에만 의존하는 형식적 성희롱, 성차별 조사가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심층 실태조사를 벌인 뒤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고용 당국의 관리ㆍ감독과 기업의 관련 사규 강화 등 제도적 보완책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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