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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 2000일… 회사 작업복 입고싶다”

입력
2014.11.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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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진압 과정 보았던 9살 아들, 심리치료도 받았으나 웃음 잃어

13일 대법서 해고무효 최종선고, 세상 떠난 동료들 생각에 눈물만

11일로 파업돌입 2,000일을 맞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는 “스물아홉에 입사해 8년을 다녔던 그 직장 로고가 박힌 점퍼가 정말 그립다”고 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11일로 파업돌입 2,000일을 맞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씨는 “스물아홉에 입사해 8년을 다녔던 그 직장 로고가 박힌 점퍼가 정말 그립다”고 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2010년 4월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41)씨는 당시 네 살 아들의 손을 잡고 목욕탕을 나왔다. 2009년 8월 파업 당시 경찰의 공권력 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6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난 뒤였다. 모처럼 아들의 등을 밀어주며 아빠 노릇을 한 날. 아들은 갑자기 골목길 물 웅덩이 주변에 빙 둘러져 있던 노란색 꽃가루를 보더니 놀라 뒷걸음질쳤다. “아빠, 최루액이야.”

아들은 파업때 쌍용차 평택공장 담벼락에서 아빠가 있는 공장에 헬기가 최루액을 뿌리는 모습을 지켜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이씨는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아들은 아홉 살이 됐다. 그 사이 1년 8개월간 심리치료도 받았으나 전쟁터를 방불케 한 파업 진압 과정을 목격한 아들은 또래처럼 건강한 웃음을 되찾지 못했다.

이씨가 아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준 ‘나쁜 아빠’가 된 것은 2009년 4월 쌍용차가 경영난을 이유로 2,646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통보한 뒤부터였다. 그해 5월 21일 그는 동료들과 공장 점거파업에 돌입했고, 11일은 회사와 싸운 지 2,000일이 되는 날이다.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찻집에서 만난 이씨는 현재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직책을 맡고 있다.

“여기서 멈췄으면 합니다. 정말로.” 동료 해고자 152명과 함께 낸 해고무효소송에 대한 대법원 최종선고(13일)를 앞두고 그가 털어놨다. 그는 동료 20여명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차례로 올리는 2,000배를 보며 “속이 탄다”고 했다. 그는 절을 못한다.

이씨는 지난해 4월 쓰러졌다. 몸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귓속에 있는 전정기관에 염증이 생겨 어지럼증과 구역질을 느끼는 전정신경염 때문이었다. 지난달 평택공장에서 수원지법 평택지원까지 3㎞를 삼보일배했던 그였지만 염증이 악화돼 절을 할 수 없다.

이씨는 “해고자가 아닌 근로자일 땐 사내 축구선수였는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공장 작업복을 걸치고 싶어했다. 스물아홉살 때 입사해 8년 만에 나가라고 통보를 한 그 직장 로고가 박힌 점퍼를 그리워했다. “공장에 들어가서 일해야 되요, 우리는.”

올해 2월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서울고법이 1심을 깨고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줬을 때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이 떠올라 눈물을 쏟았다. 희망을 갖고 회사에 손을 내밀었지만 돌아온 반응은 없었다고 했다. 2012년 대선 때는 새누리당도 국정조사를 약속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회사와 공권력에 맞선 대가는 혹독했다. 해고노동자들에겐 47억원의 손해배상(회사 33억원, 경찰 13억7,000만원)이 걸려 있다.

그는 대법원 선고와 관련해 “우리가… 잘 되겠죠?”라고 말했지만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여전히 재판 중인 징계해고자 19명과 비정규직 동료 8명이 있고, 세상을 떠난 동료들에 대한 보상 문제 등 회사측과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그는 13일 대법원 선고 뒤 회사가 담화문이라도 발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량 해고 사태 이후 세상을 떠난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 그것이 얽힌 문제를 푸는 출발이며,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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