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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언급 아직 조심스러워… 그게 유족에 대한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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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해 준 유족들에 감사… 끊임없이 대화하니 마음 열어
해양수산 투자 유치 야심 찬 추진… 여객선·어선 노후화 문제 등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많은 이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당사자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사고 직후부터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잠수요원들과 구난 전문가들, 그리고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진도 주민들까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그날 이후 각기 다른 어려움에 놓인 이 사람들을 어루만져 온 총 책임자이자, 지난 6개월을 고통스럽게 겪어낸 한 개인이기도 하다.
장관 임명장을 받은 지 불과 40여일 만이었다. 사고 직후 내려간 진도에서 그는 격분한 피해자 가족들에게 폭언을 듣고 멱살을 잡혔다. 각종 해운비리가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고 해경의 허술한 초기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그는 자연스레 교체대상 ‘0순위’가 됐다. 그 스스로도 “수습이 마무리되면 바로 사표를 낼 생각이고 그게 도리”라고 밝혔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줄곧 현장에 머물며 보여준 낮은 자세와 성실함, 그리고 그의 진심은 유족의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해수부 개혁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유임했다.
세월호 정국으로 혼란스런 와중에도 그는 묵묵히 소임을 다했다.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연안여객선 안전대책’을 내놓았고, 8월말 이후 대내외 활동을 재개하면서 침체된 해양수산 분야를 살리기 위한 설명회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세종시 장관실이 아닌 전남 진도군청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 지난 반년은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지만, 그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해 왔다. 그런 그를 지난 19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광장에서 열린 한국일보 거북이 마라톤(‘2014 어식백세 걷기대회’)에서 만나 30여분간 함께 걸었다. 깎지 않아 목덜미까지 내려온 백발, 다소 헐렁한 남색 점퍼와 면바지, 그리고 가슴에 부착된 세월호 배지가 그 답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았다.
-세월호 사고 직후 진도에 내려간 지 6개월이 지났다. 얼굴이 많이 핼쑥해진 것 같은데, 전과 비교해 몸무게는 어느 정도 빠졌나.
“비교를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체력은 좀 저하된 것 같다. 오늘 걷기 대회를 하면 좀 나아질까 모르겠다.”
-요즘도 진도군청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자고 화장실에서 샤워도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사고 이후 줄곧 군청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8월말부터는 장관으로서 공식적인 업무를 병행하기 시작했고 국내외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하지만 일정을 마친 후엔 다시 진도로 돌아온다. 화장실은 생각보다 넓어 씻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온수도 비교적 잘 나온다.”
-진도에 있다가 업무에 복귀할 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흔쾌히 동의해 줬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활동은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고 직후엔 많은 가족들이 진도에 머무는 나를 의구심 가득한 시선으로 봤지만, 계속 남아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신뢰가 생긴 것 같다. 가족들에게 정말 고맙다.”
-사고 직후 정부의 미숙한 대응으로 구조가 지연되고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정부, 특히 주무부처의 총 책임자인 장관에 대한 불신이 깊었던 것 같다. 당시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었는데, 언제 이들의 마음이 열렸나.
“4월 24일 면담을 한 날이었을 거다. 속이 타들어 가던 실종자 가족들이 다이버 이송장치인 ‘다이빙 벨’을 현장에 투입해달라는 요청을 해 이를 결정한 시점이기도 하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 10시까지 팽목항에서 가족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며 실종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심성이 착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아이들이더라. 그 모습을 함께 회상하면서 마음 아파하자 서서히 가족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 같다. 어떤 부모는 ‘장관님은 자녀가 어떻게 되냐’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정이 두텁게 쌓였다.”
- 무엇이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바꿨다고 보나.
“가족들은 내가 거센 항의를 이기지 못하고 당연히 도망갈 걸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타나 이야기 들어주니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지난달 초 ‘연안여객선 안전대책’을 주제로 기자 브리핑을 하면서 여전히 찾지 못한 실종자 10명의 사진을 꺼내보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지금도 갖고 있나.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장관은 이내 점퍼 왼쪽 주머니에서 코팅 후 철제 고리로 묶은 사진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순간, 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듯했다.) 이게 여전히 남아 있는 열 분이다. 진도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사진 속 주인공들이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최근 진도 지역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진도범군민대책위원회’가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러온 진도체육관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
“가족들은 더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큰 것 알고 있다. 지금 진도군과 정부, 가족들, 그리고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원회가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니 곧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민감한 질문이 이어지자 이 장관은 연신 손사래를 치며 말을 아꼈다. 기자로서, 아니 국민들로선 궁금할 수밖에 없는 얘기들이었지만, 실종자 가족이나 유가족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불안해 하는 것이 인양시점이다.
“거론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실종자 가족들에게)상처를 주더라. 그게 도리에 맞고….” (인터뷰 뒤인 26일 밤 실종자 가족들은 선체 인양 여부를 논의하는 첫 공식 회의를 갖고 무기명 투표를 하려 했으나 일부 가족이 참석하지 못해 일정을 연기했다.)
-세월호 사고 수습을 진두지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하나 꼽는다면.
“아직 좀 이르다. 그런 이야기는….”
-지난 6월 장관에 유임된 뒤 “사고 수습이 마무리되면 장관으로서 져야 할 책임에 합당한 처신을 하겠다”며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본인의 역할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나.
“전에 이야기 했던 바가 있기 때문에, 그 말 그대로 이해해달라.”
-일각에서는 이제는 세월호 사고 이후에 대한 대비, 즉 출구전략을 세워야 하는 시점이라는 의견도 있다.
“(손사래치며) 어휴, 그 이야기는 민감한 부분이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질문에는 말을 많이 아끼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실종자 가족들은 지금도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간절한 마음에 상처를 줘선 안 된다. 그래서 신중할 수 밖에 없다.”
-하나만 더 묻겠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사고 당시 에어포켓을 전제로 벌인 구조활동이 결과적으로 무위로 돌아간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결정을 내릴 건가.
“(잠시 생각하다)배가 완전히 엎어진 뒤였지만 그 안에는 분명 생존자가 있었을 거다. 극히 소수라 해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구출을 해야 한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에 맞는 구조 노력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또 온다 해도 (생존자가 없다고) 함부로 단정하고 구조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국감에서 한 발언은 결과가 좋지 못했고 그로 인해 나머지 구조까지 지연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의 마음까지 생각해서 이야기 한 것이다.”
화제를 돌렸다. 이 장관이 업무에 복귀한 뒤 가장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게 해양수산 투자유치활동이다. 그는 지난달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해양수산 신산업 창출을 위한 투자유치 설명회’에서 국내 250여개 기업 관계자들을 초청해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 장관이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것 아닌가.
“장관으로선 최초라고 하더라. 반응이 좋다. 부처 차원의 투자유치 설명회라면 장관이 직접 나서야 사람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지 않겠나. 이번 발표를 듣고 CEO들이 해양수산 분야에 이렇게 투자할 곳이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조선해양플랜트 세계 1위를 포함해 해양력으로 세계 12위 수준의 강국이지만, 아직도 낙후된 분야가 많다. 특히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대두된 여객선과 어선의 노후화 문제가 대표적이다. 최근 홍도 인근 해역에서 좌초된 유람선 바캉스호는 선령이 27년이나 됐다. 해양수산 강국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해양산업에 대한 투자가 절실한 상황인가.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다. 식량과 각종 자원, 에너지 등의 보고인 만큼, 유관 산업들의 발전까지 감안하면 우리의 미래가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프리젠테이션 마지막에 ‘바라는 대로 다 이뤄지는 곳이 바다’라는 뜻을 담은 이행시를 기업가들에게 전했다.”
-해양산업이 그동안 다른 분야 비해 투자 적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산업이라면 모름지기 사업성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간 타성에 젖어 해양수산 산업의 사업성을 높이는 데에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일본만 해도 과거 큰 선박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직접 여객선의 운항을 책임지는 ‘선박공영제’를 도입했다. 낡은 어선들을 없애고 새로운 선박을 건조할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물론 이게 가능하려면 금융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금융 역시 정부가 장기 분할 상환 등 제도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
-이번 투자유치 설명회에서 소개한 사업 중 가장 유망한 분야를 꼽는다면.
“오래된 여객선과 어선들을 바꾸는 선박신조사업이 좋은 투자처가 될 것으로 본다. 또 국내에서 현재 쓰고 있는 수산기자재들도 굉장히 낙후돼 획기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수요가 더 많아질 것이다. 하나 더 고른다면 거대 중국 시장을 노릴 수 있는 수산가공업 분야도 전망이 좋다.”
-해양산업 분야 활성화를 위해 국회 통과가 가장 절실한 법은 무엇인가.
“크루즈산업 육성법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크루즈나 마리나 같은 산업을 육성해서 키울 때가 됐다. 그동안 부자 산업이란 인식 때문에 미뤄왔던 게 사실인데, 이제는 글로벌 차원에서 봐야 한다. 우리 나라의 선박 건조기술은 세계 1위지만, 크루즈 선박은 아직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면 분명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또 관련 제조업도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만큼, 정부차원의 본격적인 육성 지원이 절실하다.”
-장관으로 취임 당시 해수부를 일등 부처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 꿈은 아직 유효한가.
“그렇다. 국민들의 기대와 믿음에 가장 잘 부합하는 부처가 되겠다는 의미다. 각 부처마다 성격이 달라 성적을 매기긴 어렵겠지만 해수부의 경우, 해양강국, 수산부국의 꿈을 이루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때로는 잘한다는 평가도 받을 것이고 공직자들 역시 해수부에 미래가 있구나 생각하고 몰려들거라 생각한다. 그게 일등부처인 셈이다.”
-의원 생활을 오래 하다 이번 국감 때는 처음으로 행정부 입장에서 감사를 받았는데. (이 장관은 4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반대 입장에 서보니 역시 긴장되는 것 같다. 국회 의원들이 국정 운영의 문제점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정책 대안들을 연구해서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청해서 들었다. 실제로 반영해야 할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최근 우리나라 수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해경 단속에 저항하다 선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경 대응이 적절했나.
“해경의 역할은 불법어로를 단속하는 것이다. 대원들로선 당시 중국인들의 지나친 저항으로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당행위였고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법 집행은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해경 해체와 관련해 논란이 많은데, 해양영토를 수호하는 역할은 누군가 꼭 해야 하지 않나. ‘해체’ 보다는 기존 역할을 ‘확대개편’ 하는 차원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한중 양국간 불법조업 공동순시도 미뤄졌는데.
“선원이 사망한 사실에 대해선 중국으로서도 충격 느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해는 된다.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유감으로 생각한다. 다만 양국의 바다를 둘러싼 질서는 협력을 통해 잘 잡아가야 하고 양국 정상도 합의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으로 한중 우호가 훼손되어선 안 된다. 따라서 외교적 노력 기울여서 조만간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다. 본인의 정치인생에서 세월호 사고는 어떤 의미인가.
“아직 그건 언급하기 적절치 않다. (사고 수습이)다 끝나고 나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얘기할 수 있는 거지. 지금은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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