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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약 없어진 전작권 환수, 명분 실리 다 잃었다

입력
2014.10.24 04:40

한국과 미국이 워싱턴에서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를 개최하고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재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전환시기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로 의견을 모았다. 전작권 재연기와 함께 양국간 이견이 있었던 한미연합사 서울 잔류와 경기 동두천 미2사단 일부 부대의 잔류를 수용키로 했다. 그러나 전작권 재연기 타당성과 전환시기는 물론 미군 부대 잔류를 둘러싸고 큰 논란이 일 전망이다. 무엇보다 중차대한 안보현안을 여론을 배제한 채 밀실에서 결정한 데 대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향후 전작권 전환시기를 우리측 요구대로 ‘조건에 기초한 전환’ 방식으로 추진키로 했다.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과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공격징후를 포착해 타격하는 킬 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가 완성되는 2020년대 초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제대로 추진될 지 미지수인데다 북한이 이에 맞서 다른 수단을 강구할 것이 분명해 전작권 전환시기가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방부는 “무기한 연기는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우리 군이 그 동안 보여온 전작권 환수에 대한 안이한 태도를 보면 전혀 기우라고만 할 수 없다.

우리 군은 전작권 전환 재연기 사유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들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더 진전됐다 해도 전략적으로 이미 상수나 다름없다. 더구나 북핵에 대해서는 미국의 핵우산 보장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1년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국방비는 한국(308억 달러)이 북한(9억2,000만 달러)보다 33.4배 많다. 북한의 국방비는 한국의 3%에 지나지 않는다. 핵과 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에서 남한이 열세인 부분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위에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권 전환을 마냥 늦추자는 것은 북한군과 상대할 능력과 여건이 안 된다고 고백하는 것밖에 안 된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가 연합사 용산 잔류와 미2사단 예하 210화력연대의 동두천 잔류로 결정된 것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2년여 지연될 정도로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른 평택기지 이전 사업이 뿌리 채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연합사 잔류는 서울시의 용산공원 조성 계획에 차질을 빚고, 미2사단 동두천 잔류는 시민과 지자체의 재산권 행사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국민들의 생존권과 바꿨다는 비난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그대로 믿기 어렵다.

우리 정부는 그 동안 전작권 전환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이명박 정부가 2015년으로 연기했을 때도 더 이상 연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반복되는 식언과 약속 파기에도 정부는 한 마디 해명도 사과도 없다. 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침묵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와 군이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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