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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배상 3800억 혈세 나갔는데 과실 공무원은 봐주기?

입력
2014.10.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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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구상권 청구액 고작 1.7%… 배상유형 등 분류 연구 나몰라라

패소한 국민엔 소송비용 전액 청구 "국가상대 소송 꺼리게 만드는 효과"

최근 5년간 국가가 불법이나 과실을 저질러 국민에 배상한 금액이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막대한 배상금을 세금으로 물어주면서도 공무원에 대한 구상권 청구는 극히 드물었다.

20일 법무부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김진태 의원실(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실(새누리당)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공무원들의 불법행위나 과실로 인해 지급된 국가배상 액수는 3,819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부가 불법ㆍ과실 책임 공무원에게 배상금을 회수하는 절차인 구상권 청구 액수는 68억원(1.7%)에 불과했다. 건수로 보면 같은 기간 국가배상은 1,609건(확정 판결 기준)이지만 구상권 청구는 44건(소송제기 기준)에 그쳤다.

국가배상이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손해를 배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죄 판결에 따라 지급되는 형사보상금과는 별개이다.

올해 가장 고액의 국가배상이 확정된 것은 청도군 보도연맹 사건에서 좌익사상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학살당한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총 157억원을 지급한 사건이었다. 간첩조작ㆍ고문ㆍ불법연행 등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형사 사건은 재심 무죄나 과거사 정리위원회 결정으로 고액 배상이 이어지고 있다. 고문 끝에 간첩으로 몰린 김우철ㆍ이철 형제 사건도 2011년 유족들에게 2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올해 1억원 이상의 배상금이 지급된 사건의 소관은 국방부ㆍ경찰청 공동, 경찰청, 국방부, 국가정보원, 대법원, 법무부, 해양수산부 순이었다.

최근 정부의 인권유린이나 관리부실 등도 배상의 대상이 된다. 지난 6월 1심에서 경찰이 진술조서 문답의 내용을 바꿔 기재해 억울하게 구속된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총 1,8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세월호 유족 일부도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국가배상 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원인을 제공한 공무원들에게 아무 책임을 묻지 않고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감당하는 것은 논란거리다. 검찰과 법무부는 해당 공무원의 행위가 중과실인데다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소속 부처와의 의견교환을 통해 구상권 청구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의 책임이나 아무의 책임도 아닌’ 일에 그친다. 법무부 관계자는 “중과실이란 누가 그 일을 해도 그 정도의 실수는 안 할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이는 경우인데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개별 공무원에게 막대한 금액을 받아내는 것이 가혹하다면 사후 징계 등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이라도 작동해야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법무부 국가송무과는 배상 유형, 재심사건 여부 등을 분류해 관리하거나 연구하지 않는다. 국가의 잘못으로 한 해 평균 763억원의 배상금을 세금으로 충당하면서도 이를 반성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은 하고 있지 않는 셈이다.

반면 패소한 국민에게는 소송비용을 100% 청구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구상권 행사와 (국가소송 패소자의) 소송비용 부담은 각각의 법률적 요건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므로 비교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차장은 “국가배상에 따른 구상권 청구는 국가재정을 튼튼하게 하고, 중과실을 저지른 공무원ㆍ지자체에 경고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같은 행위를 다시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며 “정부가 ‘구상권 청구를 하면 사기가 떨어진다’는 논리로 과실을 저지른 공무원에게 아무 피해가 돌아오지 않게 하는 것은 국가의 불법적인 명령을 거부할까 싫어해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패소한 국민에게는 소송비용을 악착같이 받아내는 것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꺼리게 만드는 효과를 노리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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