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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의 절묘한 치고 빠지기

입력
2014.10.18 04:40

"대통령에 결례… 실수… 죄송" 하루 만에 논란 진화했지만

개헌 논의 불지피기 소기의 성과에 당청갈등 확전 피하기 2중 효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당 국감대책회의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개헌 봇물'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당 국감대책회의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개헌 봇물'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개헌 논의와 관련해 연일 ‘전략적 줄타기’를 하고 있다. 전날 개헌 카드를 불쑥 내밀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섰던 그는 17일 돌연 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면서 당분간 개헌 논의 중단을 선언했다. 연말 개헌 논의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만큼 당청갈등으로 번지는 건 피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행보다.

김 대표는 이날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자신이 전날 촉발시킨 개헌 논의와 관련, “박 대통령이 아셈(아시아ㆍ유럽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분명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개헌 논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의 참석 후 기자간담회에서도 “개헌론을 촉발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실수로 커져 버렸다”면서 “‘바로 꼬랑지 내렸다’는 비판이 나오겠지만 그건 내가 박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견상 김 대표의 언급은 전날 중국 상하이 기자간담회에서 “정기국회 이후 봇물처럼 터져나올 개헌 논의를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까지 거론했던 자신의 발언을 취소한 것이다. 게다가 국정운영의 한 축인 집권여당 대표가 하루만에 식언을 했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의 전후 과정을 찬찬히 짚어보면 김 대표가 전날에 이어 이날도 다분히 전략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 대표의 진화(鎭火)에도 불구하고 개헌론자인 자신의 구상대로 정기국회 이후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에는 개헌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런 마당에 당장은 스타일을 구기는 한이 있더라도 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김 대표는 확전까지 피하는 일거양득을 취하는 셈이 됐다.

실제로 김 대표는 이날 자신의 상하이 발언에 대한 보도 내용을 부인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대체로 자신의 발언을 번복할 때 쓰는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는 표현 대신 “민감한 사안이라 피했어야 한다”거나 “휘발성이 큰 데 실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 논의 중단 시점을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로 못박았다. 정기국회 이후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과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할 권력분점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 등이 분명한 자신의 입장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사과에도 정치적 노림수가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친박계의 강력한 반발을 무마하고 해외순방준인 박 대통령을 배려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개헌 논의가 박 대통령 때문에 막혀 있다는 정치적 효과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대립 축을 청와대와 야당으로 전환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갑작스런 사과 발언이 전해진 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세는 박 대통령에게 맞춰졌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여당 대표도 마음대로 얘길 못하고 대통령 눈치를 보고 있다”면서 “개헌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은 “대통령의 한마디에 개헌 논의가 좌지우지 돼서는 안된다”고,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여당 대표의 발언을 하루만에 번복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야말로 분권형 개헌의 당위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손’이다”고 가세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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