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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개헌과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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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당내 보수혁신위 논의 의제에서 개헌을 제외했다. 개헌이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점과 경제활성화가 우선이라는 친박 주류의 생각도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정의화 국회의장은 ‘개헌 논의는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고,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개헌을 하지 않고는 보수혁신은 의미가 없다”며 개헌 특위 구성을 지도부에 요청했다. 새정치연합은 당내 사정상 개헌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이렇듯 개헌 논의는 정치적 셈법과 정파에 따라 다양하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제9차 개헌 이후 민주화가 정착된 단계에서 이른바 ‘87체제’가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개헌론은 부단히 제기돼 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개헌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천차만별이고, 헌법 개정을 발의할 수 있는 대통령이 개헌에 대한 의지가 없는 한 개헌 논의 자체가 탄력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국민의 절대 다수가 개헌의 절박함을 느끼고 있지 않다면 당파적ㆍ정략적 개헌 논의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낮다.
또 한국정치의 난맥과 일상화하는 정국파행의 원인을 현행 대통령제에서 찾는다면 이는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대통령으로의 과다한 권력 집중이 승자독식을 가져오고 정파간의 무한투쟁을 가져온다는 상황 인식은 적절하다. 그러나 권력집중을 해소하기 위한 권력분산의 방안으로서의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의 변경이 한국정치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4년 중임의 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도 허다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통성을 가진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장점이 발현될 수 있으나,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부정적 요소만 극단적으로 노출될 수도 있다. 이는 각국의 역사적 경험과 정치문화, 선거ㆍ정당 등의 정치제도,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 정당민주주의의 정도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제의 안정적 운영은 입법, 사법, 행정 3부의 확고한 견제와 균형, 타협과 합의가 지배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정당문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권력의 분산, 체화된 지도자의 민주적 리더십 등이 촘촘히 얽혀있기에 가능하다. 한국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대통령의 압도적인 권력우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여권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의 존재보다는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정책결정의 지배적 변수가 되고 있다. 국회는 효과적으로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며 야당은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당내 계파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형태의 변경은 사회적 약자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정당체제로의 발전, 투명하고 공정한 정치자금을 담보할 수 있는 정치자금법 개정, 비례대표의 확대를 통한 합의제로의 변화 등을 견인할 선거제도, 공천의 혁신을 가져 올 선거법 등 중간 또는 하위 레벨의 혁신이 뒷받침될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현재 한국의 권력구조의 변경이 불필요하다는 주장과는 전혀 맥락을 달리하는 것임은 자명하다. 중간 레벨의 정치제도의 개선과 맞물릴 때 정부형태의 변경이 한국정치의 지향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국회 개회 중 국회의원의 실질영장심사를 위한 국회 동의 불필요, 세비 동결 등 새누리당이 의제로 내세운 방안들에서 나오는 혁신이라는 거창한 단어는 낯설고 뜬금없다. 새정치연합이 내세운, 재보선 원인 제공 정당은 후보를 내지 않는 방안과 출판기념회 폐지 등의 방안 역시 한국정치 난맥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다.
현행 단순다수제의 소선구제의 혁파나 지역구 의원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비례대표의 확대 등의 제도적 디자인은 양당체제를 분할하고 있는 거대여당과 야당에겐 ‘불편한 진실’들일 뿐만 아니라 ‘적대적 공존’을 위협할 수 있다. 개헌이 블랙홀이 될 수 있다거나, 경제활성화를 위해 개헌 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는 정당의 체질 개선과 정당체제의 변화, 선거제도의 개선 등, 민주주의를 공고화할 수 있는 제도 혁파에 천착할 때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고민 없는 개헌 논의 배제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또 하나의 정략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두고 볼 일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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